‘여성 2호 치안정감’ 이은정 경찰대학장
남성영역이던 수사부서 거쳐 30년 근무‘부드러운 리더십’ 구성원과 활발한 소통
“미투로 우리 사회 성인지 감수성 높아져
경찰 업무에도 성별 구분 없는 문화 확산”
이은정 경찰대학장
이은정(54) 경찰대학장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가정사를 묻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본인 역시 개인사는 말하지 않는다. 사적인 영역을 공유하는 건 일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아니라는 나름의 원칙 때문이다. 30여년간 경찰관 생활을 하면서 ‘여성’이라는 점을 걸림돌로 의식하지 않았다고 했다.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치안정감에 오른 이 학장은 2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래 경찰 인재를 육성하는 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학장은 1988년 경사 특채로 경찰에 입문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경찰대학은 존재했지만 여성을 뽑지 않았고, 간부후보생 역시 여성을 뽑지 않았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곁에서 도와줄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 이 학장은 경찰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렇게 동국대 경찰행정학과에 입학한 이 학장은 경사 특채에 합격해 경찰 제복을 입었다. 경찰 업무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집안의 반대가 있을 법도 했지만, 부모님은 이 학장이 하는 일을 “믿고 지지해 줬다”고 했다. 업무 강도가 세고 남성의 영역으로 분류되던 수사 부서를 피하지 않았다. 이 학장은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일을 하다 보니 이 자리까지 왔다고 했다. 치안정감은 경찰청장(치안총감) 바로 아래 계급으로 경찰 조직 내 6명뿐이다. 잠재적 경찰청장 후보다.
경찰 내에서 이 학장은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통한다. 주변 후배들로부터 ‘마더 테레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 학장은 업무가 조금 더디더라도 조직 내 공감대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구성원 간에 활발한 의사소통을 기반으로 능동적인 업무 참여가 있어야 궁극적으로는 목적한 바를 달성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학장은 지난해 여성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대해서도 느낀 게 많다고 했다. 이 학장은 미투 운동이 활발했을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생활안전부장으로 재직하며 성범죄를 담당했다. 이 학장은 “미투 운동을 계기로 우리 국민 전체적으로나 경찰 내부적으로나 성범죄에 대한 감수성이 많이 높아진 것 같다”면서 “경찰 업무에서도 성별 구분이 무색해지고 있는데, 이런 문화를 확산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학장은 후배들에게 부탁하는 한 가지가 있다. 경찰이 되기로 결정했던 그 마음을 유지해 달라는 것이다. 이 학장은 “가정폭력이든 성폭력이든 어렵고 힘든 일을 겪는 국민이 도움을 요청하면 절대 외면하지 말라고 후배들에게 부탁한다”며 “사건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행정기관도 이웃집도 아니고 바로 경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2019-12-2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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