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야구에서 부활을 노리는 이승엽(34.오릭스 버펄로스)이 아침부터 설원을 홀로 뛰었다.
퍼붓는 함박눈을 맞고 쌓인 눈을 헤치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2군 경기장을 조용히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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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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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경북고를 졸업하고 1995년 삼성에 입단해 6년간 머물렀던 이곳은 지금의 이승엽을 만든 장소다.
투수로 시작해 아시아를 주름잡는 거포로 재탄생하기까지 타격 기술을 새로 배우고 체력을 키웠던 이곳에서 이승엽은 ‘초심’을 찾는 듯했다.
다른 말은 필요 없다는 듯 이승엽은 “내년에는 (야구 인생을) 무조건 걸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최근 몇 년간 성적이 기대를 밑돌면서 이맘때 이승엽의 얼굴에서는 항상 비장함이 묻어났지만 도리어 벼랑에 몰린 올해에는 마음을 비운 덕분인지 표정에 여유가 넘쳤다.
요미우리의 무한 경쟁 탓에 무겁게 출발했던 예년과 달리 “홀가분하다”며 내년 2월부터 일본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에서 열릴 스프링캠프를 더 바라는 듯했다.
◇‘야구 그만둘까..어리석은 생각이었을 뿐’
이승엽은 “‘야구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위기를 느꼈고 주변 상황에 등 떼밀려 내가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상상도 해봤다.지금 은퇴한다면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등등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며 올해를 되돌아봤다.
지난 2월 미야자키 스프링캠프에서 열린 요미우리 주력조 훈련에 제외됐던 이승엽은 올해 ‘주전은 어렵겠구나’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하라 다쓰노리 요미우리 감독은 가메이 요시유키,다카하시 요시노부,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등 1루 수비가 가능한 자원을 풀가동하겠다며 이승엽을 압박했고 출전 기회를 사실상 박탈했다.
56경기에 출전해 고작 108번 타석에 섰고 타율 0.163에 홈런 5개,11타점의 초라한 성적.
“감독이 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찬스를 잘 살렸다면 (요미우리에서) 밀려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승엽은 자책했지만 야구를 시작하고 처음 ‘대타’ 인생을 산 그에게 많은 것을 바란다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이승엽은 “전문 대타를 처음으로 했는데 장난이 아니더라.오미치 요시노리가 전문 대타였는데 그 선수는 언제나 갈지 모르기에 1회부터 몸을 푼다.그런데 우리 팀은 주전이 아니면 경기 중에는 벤치 앞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벤치 뒤에서 몸을 푸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시즌 중 아내에게 ‘야구를 할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얘기까지 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6살인 아들 은혁이 이제 막 야구를 알기 시작하면서 평범한 야구 선수가 아닌 대스타였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고 했다.
시즌이 끝나고 요미우리의 방출 통보를 앞두고 있던 무렵 이승엽은 한 달간 집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다.
팔굽혀펴기 250회,2.3㎏짜리 아령을 들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음식량을 조절,오후 6시 이후에는 되도록 군것질을 안 하는 방법으로 한 달간 훈련했더니 옆구리 살이 눈에 띄게 빠져 갈비뼈가 보이는 수준까지 감량했다.
“(은퇴는) 어리석은 생각이었다.지금은 그런 생각을 접었다.야구 잘하는 모습을 아들에게 꼭 보여주고 정상에 있을 때,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순간 은퇴한다는 목표로 새로 출발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화려했지만 롤러코스터 같았던 요미우리 5년 생활
‘한국 선수들의 무덤’으로 불린 요미우리에서 이승엽은 그래도 성공 가도를 달린 유일한 선수다.
2006년 홈런 41방에 108타점,타율 0.323을 때려내며 요미우리 역대 70번째 4번 타자로 부끄럽지 않은 성적을 냈다.
2006년부터 올해까지 5년간 뛰었던 요미우리에 대해 이승엽은 “선수로서 너무 행복했다.하지만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으며 배울 것,절대 안 배워야 할 것을 모두 가르쳐 준 곳”이라고 정리했다.
잘하면 기대 이상으로 띄웠다가 못하면 가차없이 내리찍는 요미우리 특유의 문화를 ‘롤러코스터’에 비유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팬들이 선수에게 대가 없이 고가의 선물을 주는 ‘스폰서’ 문화가 일반적이다.
관중이 꽉 찬 도쿄돔에서 열렬한 응원을 등에 업고 야구를 하면서 팬에게서 각별한 선물도 받는 전국 구단 요미우리 선수만의 화려한 일상을 이승엽은 또렷이 기억한다.
이승엽은 이름도 알지 못하는 여성팬으로부터 고가의 명품 시계를 3개나 받았다고 했다.
자신의 팬이라며 손목시계를 주더니 그 시계를 찬 모습이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린 뒤에는 잊지 않고 선물을 ‘애용’해줘 고맙다며 또 시계를 줬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호사도 잠시다.성적을 내지 못하면 감독,코치,선수는 물론 팬들도 금세 떠나간다.인격적인 모독은 당연히 감내해야 한다.
이승엽이 요미우리에서 잊지 못하는 이는 지금은 히로시마 도요카프로 옮긴 우치다 준조 타격코치다.
우치다 코치는 2006~2007년 요미우리 타선을 진두지휘하면서 이승엽이 2년 연속 홈런 30개 이상을 때릴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요미우리 타격 성적이 좋지 않아 히로시마로 가셨지만 호흡이 잘 맞았다.우치다 코치로부터 혼도 많이 났다”며 은사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절친한 포수 아베 신노스케는 이승엽이 2군에 있을 때 안부를 물어왔고 다카하시 요시노부도 꾸준히 관심을 보였던 친구들이다.
◇‘생각할 시간이 있으면 한 번 더 스윙한다’
선동열 삼성 감독은 주니치에서 뛸 무렵 열혈남아 호시노 센이치 감독(현 라쿠텐 사령탑)에게서 ‘그렇게 할 거면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오기가 발동했다고 자주 말한다.
이승엽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고 했다.지바 롯데 2군 감독으로 단내나는 훈련으로 유명한 다카하시 요시히코 코치가 이승엽의 투지를 살려준 인물이다.
이승엽은 “지바 롯데에서 뛰던 2004~2005년,타석에서 잘못 때리고 들어와 벤치에서 얼굴을 감싸고 생각하고 있으면 다카하시 코치가 비아냥대면서 ‘생각할 시간 있으면 뒤에 가서 스윙이나 한 번 더 하고 오라’며 지나갔다.기분은 좋지 않지만 실제 한 번 더 스윙하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2군에 오래 머문 올해 이승엽은 다카하시 코치와 2군에서 다시 만났다.다카하시 코치는 식당에서 주위 사람이 다 보는 가운데서도 이승엽의 타격 폼을 따라 하며 단점을 지적하고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중시하는 다카하시 코치의 주문은 내년 명예회복을 바라는 이승엽이 마음가짐을 새로 가다듬는 밑바탕이 됐다.
이승엽은 “내년에는 무조건 인생을 걸어야 한다.야구가 제일 중요하다”면서 “박찬호(37) 선배와 한솥밥을 먹는데 팀이 이를 과도하게 한류 마케팅에 활용하고 야구에 피해가 갈 정도로 내게 홍보를 요구한다면 단호히 거부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경기장 대신 어쩔 수 없이 집에 머물면서 가정의 화목함과 단란함으로 야구 인생 최대 고비를 넘긴 이승엽.이제는 타석에서 잃었던 웃음을 되찾을 차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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