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연습생 신화’ 이용래의 재발견

[아시안컵] ‘연습생 신화’ 이용래의 재발견

입력 2011-01-05 00:00
수정 2011-01-0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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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주 → 부상 → 경남 연습생 → 국가대표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의 수비는 이영표(34·알 힐랄)로 대표됐다. 지금까지 무려 9년 동안이다.

세대교체를 역설하는 조광래 대표팀 감독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연습생’ 이용래(25·수원)에게 쏠렸다. 닮은 점이 많다. 축구 지능이 높은 것은 물론, 감독의 전술 ‘소화력’도 뛰어나다. 조 감독은 지난달 30일 시리아전에서 첫 실전 실험대에 올렸다. A매치 데뷔전. 이용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조 감독으로서는 ‘재발견’이었다.

이용래라는 이름부터 낯설다. 그러나 그는 유망주였다. 유성생명과학고에 재학 중이던 2002년 대한축구협회의 해외 유학 프로그램에 선발되기도 했다. 프랑스 FC메츠에서 꿈을 무럭무럭 키운 이용래는 시에라리온전에서 결승골을 뽑아내는 등 이듬해 17세 이하(U-17) 청소년월드컵에서 맹활약했다. 고려대에 입학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불운이 왔다. 재활에만 무려 6개월이 걸리는 큰 발목 부상을 입은 것이었다. 이후 문제가 더 컸다. 부상에 대한 공포로 제대로 뛰지 못했다. 대표팀 선발은커녕 이름 석자마저 잊혀 갔다. 1년 선배 박주영(26·AS모나코)이 축구 천재의 칭호를 얻으며 화려하게 자퇴한 뒤 K-리그에 거창하게 선을 보였던, 바로 그때였다. K-리그 스카우트들마저도 “이용래는 끝났다.”고 했다.

K-리그에서 뛰고 싶었다.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 신청했지만 번외지명이었다. 데려간 곳은 경남FC. 당시엔 떠들썩했다. “천하의 이용래가 번외지명이라니….” 여기저기서 수군덕거렸다. 연봉 1200만원의 연습생. 그게 현실이었다.

당시 조광래 경남 감독은 그에게 공격과 수비를 오가는 중앙미드필더의 임무를 부여했다. 몸이 닳도록 뛰었다. 당시 30경기 가운데 28번이 풀타임이었다. 6골 6도움의 녹록잖은 성과를 올리면서도 “내일은 또 다른 걸 보여주겠다.”고 입술을 악물었다. 지난해에도 날았다. 그는 경남의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일등공신이었다. 화려한 두 시즌 뒤 이용래는 수원의 러브콜을 받았다. 이적료는 6억원. 1200만원짜리 연습생이 6억원의 대박을 터뜨렸다. 경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47명의 아시안컵 예비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뒤 정조국(27·AJ오세르)의 프랑스 진출로 24명의 최종 멤버로도 뽑혔다. 보름간의 ‘땜질용 연습생’ 생활 뒤에 그는 어엿한 A대표팀 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대표팀에서 이용래의 쓰임새는 많다. 튼튼한 허리를 도맡아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는 이영표 자리까지 소화해 낼 능력이 있다. FC메츠 시절부터 그는 왼쪽 풀백을 맡았고, 대표팀 제주 전훈에서도 훌륭했다. 지동원(20·전남)과 손흥민(19·함부르크) 등이 이끌 미래의 대표팀. 이용래도 “한몫하겠다.”고 외치고 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2011-01-0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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