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광복회장
尹정부, 뉴라이트 인식에 동조광복 후 이어져 온 역사관 왜곡
뉴라이트, 역사기관서 나가야
대한민국 화폐 기존 인물 교체
상반기 공청회 뒤 정부에 건의
日 식민사관 잔재 곳곳에 있어
화합·발전 위해 빨리 털어내야광복 8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12·3 비상계엄이 몰고 온 탄핵 정국의 극심한 분열상을 극복하고 통합된 미래로 나아가는 해법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현대사의 산증인이자 우리 사회의 원로로 꼽히는 이종찬 광복회장을 만나 독립의 역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회장은 “광복 80주년은 식민사관의 잔재를 청산하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통해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일제강점기를 미화하며 독립운동의 의미를 폄하·훼손하는 뉴라이트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것이 광복회 제1의 임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뉴라이트 진영의 왜곡된 역사관이 우리 사회 일부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이는 국민적 통합을 방해하는 주요 요소라고 봤다. 그는 식민사관의 잔재를 털어내 국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역사적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진정한 화합과 발전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일본 내 양심 세력들과 손잡고 전후 일본의 군국주의 잔재 청산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뷰는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진행됐다.
도준석 전문기자
도준석 전문기자
-광복 80주년을 맞는 올해 탄핵 정국이 몰아쳤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출정식을 매헌기념관에서 했다. 윤봉길 의사의 독립 정신을 이어받아 공정과 정의의 역사를 세우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정치적 소명을 약속했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에 대해 국민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올해 중점 사업은.
“지난해 한덕수 총리가 대통령의 뜻이라면서 광복 80주년의 기본 방향을 무장독립 투쟁이 아닌 교육·문화 투쟁으로 잡아 달라는 요구를 했다. 교육·문화 투쟁은 독립운동의 주류가 아니고 보조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한 일이 있다.”
-윤석열 정부가 왜 이런 요구를 했는지.
“당시 국내에서 교육·문화 운동을 하려면 일정 부분 총독부의 협조가 없으면 안 된다. 신문사가 일제에 반대하면 폐쇄되는 이치다. 결국 교육·문화 운동은 총독부와의 타협 노선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일제가 우리 근대화에 도움이 됐다는 것과 표리관계가 있다. 대통령이 뉴라이트 식민지 근대화론에 동조한 것이라 내가 저항했다. 문서로 남기기 위해서 한 총리에게 편지까지 보냈다. 편지를 보낸 후 올해 광복회 80주년 행사 예산 대부분이 잘린 것을 뒤늦게 알았다.”
-윤 대통령의 역사관을 어떻게 평가하나.
“윤 대통령은 과거엔 전쟁 전의 일본과 전쟁 후의 일본이 다르다고 했다. 전전의 일본은 침탈과 수탈을 했으나 전후엔 일본이 민주주의로 가는 것이라고 했고 나도 찬성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지금 전전과 전후를 혼동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근대화가 일본의 덕분이라는, 즉 뉴라이트의 근대화 식민지론을 지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역사관이 왜 변했다고 생각하는가.
“뉴라이트의 영향 때문이다. 전전 일본의 수탈을 항의하는 우리 국민을 ‘반일종족’이라 비하하는 사람을 한국학 중심연구기관장으로 기용했다. 한마디로 ‘이완용 사관’이다. ‘일제강점이 우리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 위안부는 자발적인 매춘’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의 사관을 윤 대통령이 받아들였다.”
-광복 80주년의 역점 사업은.
“역사의 뿌리가 없는 정권은 똑바로 설 수가 없다. 국가의 정체성을 세우는 것이 국가 존립의 길이다. 이런 맥락에서 뉴라이트를 퇴출시키는 것이 광복회 제1의 사업이다. 일본 돈을 받아 연구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정부 세금으로 쓰는 역사기관이나 공공단체에서 뉴라이트는 자진해서 나가야 한다. 이들의 역사 왜곡을 고발하면서 국민운동을 통해 퇴출 운동을 시작할 것이다.”
-용산 대통령실에 일본 밀정이 있다고 했는데.
“윤석열 정부는 광복 후 이어 온 독립운동의 전통을 무시했다. 무장독립운동이나 안중근, 윤봉길 의사의 투쟁이 광복을 가져온 것이 아니고 연합군의 승리가 독립을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역사관 자체가 왜곡됐다. 뉴라이트들은 일본에서 유학 경험이 있거나 일본의 돈을 받아 연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과거 한일합병에 앞장선 일진회와 맥이 닿는다. 한마디로 현대판 일진회다. 우리가 뉴라이트 역사관을 비판하니 이들이 윤 대통령을 움직여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을 통해 국가안보실에 압력을 가해 광복회 예산을 삭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역점 사업은.
“대한민국의 기존 화폐 인물을 바꿔야 한다. 우리 화폐를 보면 전부 도포 쓰고 상투를 튼 인물들이다. 이율곡, 퇴계 이황 이후 500년이 지났어도 화폐에 들어갈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반기 내에 공청회를 통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모아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다.”
-어떤 인물이 적합한가.
“우리 근현대사에는 경제나 과학을 진흥시킨 인물이나 걸출한 문화적 인물들이 많다. 한국의 발전을 이끌어 온 이런 인물들로 교체돼야 한다. 정치적 시빗거리가 있는 인물들을 제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올 상반기 내에 광복회에서 공청회를 통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화폐 인물에 적합한 역사적 인물들을 정부에 건의하겠다. 개인적으로 윤동주나 이육사 같은 분들도 화폐에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광복회 예산 지원 논란이 있었는데.
“올해는 한일 수교 60주년이자 광복회 창립 60년이기도 하다. 1965년 한일 수교 당시 일제 식민지배 배상금을 ‘대일 청구권 자금’이란 모호한 이름으로 받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일 청구권 자금을 우리 선배(독립유공자) 몫으로 떼어 놓았고 ‘푼푼이 나눠 주면 한번 주고 마는데 경제발전에 투자하자’는 제의를 했다. 이렇게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마련한 ‘순국선열·애국지사 사업기금’이 포스코(옛 포항제철) 등 국책 사업에 들어가서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정부의 광복회 지원은 국가 예산에서 주는 것이 아니다. 이를 착각하면 안 된다.”
-과거사 문제는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데.
“언젠가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갔을 때 문에 ‘용서하자 그러나 과거는 잊지 말자’(Forgive but never Forget)라고 새겨진 걸 본 적이 있다. 쓰라린 고통을 잊지 말고 용서하자는 말이다. 아일랜드 독립 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일랜드 독립 유공자 묘소에 참배하고 헌화를 했다.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유대인 묘소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 용기를 가졌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우월한 국가와 민족만이 가능한 것이다. 일본은 아직도 일제 군국주의와 가혹한 식민지 정책에 대해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일본에는 이런 비도덕적인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양심 세력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그들과 손잡고 전후 일본의 군국주의 잔재 청산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일제 마지막 총독인 아베 노부유키는 조선을 떠나면서 ‘우리는 조선민에게 철저하고 집요한 식민지 교육을 했다. 조선이 우리의 식민지 교육에서 벗어나려면 적어도 100년은 걸릴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일본이 뿌려 놓은 식민사관은 알게 모르게 한 민족의 정신을 지배할 정도로 뿌리가 깊다. 광복 80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식민사관의 잔재가 곳곳에 숨어 있다. 이를 빨리 털어내지 못하면 일본의 문화적 침공을 당할 수밖에 없다.”
■ 이종찬 회장은
이종찬(89) 회장은 1936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육사(16기) 졸업 후 박정희 정권의 국가재건회의에 참여했다. 4선 국회의원으로 민정당 원내총무로 활동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직인수위 위원장을 거쳐 안기부장에 임명된 뒤 개혁 작업에 착수해 안기부를 국가정보원(국정원)으로 개편했다. 여야를 넘나드는 현대사 산증인으로 2023년 6월 23대 광복회장에 취임했다. 광복회 공식 문서에 서기 대신 ‘대한민국 연호’를 공식화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의지를 실천했다.
오일만 논설위원
2025-01-2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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