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료의 덫’ 0∼2세兒 어머니 가정 육아 포기

‘보육료의 덫’ 0∼2세兒 어머니 가정 육아 포기

입력 2012-06-03 00:00
수정 2012-06-03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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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수당제 도입, 육아휴직제 보완 등 시급

정부가 올해 3월부터 0∼2세 영아의 시설이용 보육료를 부모의 소득과 관계없이 지원한 것을 계기로 각종 부작용이 불거지고 있다.

신생아 어머니가 아기를 가정에서 키울 수 있는데도 장시간 육아시설에 맡겨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 것은 물론, 선진국조차 부러워하는 한국식 ‘애착육아’를 포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영아의 보육시설 이용률은 정부의 전면 지원이 결정되기 3년 전인 2009년에 이미 50%를 넘어섰다.

시설보육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아동수당제를 도입하고 산모의 육아 휴직제를 보완하는 등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국회예산정책처가 제언했다.

◇ 0∼2세 때 애착관계가 인생을 좌우

유아교육 전문가들은 생후 24개월 이전에 형성된 애착 관계가 아이의 신뢰감 형성, 정서적 안정, 사회성 발전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애착관계란 아기들이 자신에게 민감하게 반응을 잘 해주는 성인과 생후 6개월에서 2년 사이에 형성하는 관계다.

기어다니거나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친숙한 애착 대상을 안전기지로 삼아 주변을 둘러봤다가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시기의 부모 반응이 애착 형태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아기의 지각, 감정, 기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안정된 애착관계는 두뇌 발달, 사회성, 독립심 형성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불안정한 관계는 신뢰감과 자신감을 떨어뜨린다. 그 결과 적대적이거나 공격적인 성향을 보여 다른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어렵게 하기도 한다.

엄마와 제대로 형성된 애착관계가 인생을 좌우하는 셈이다.

애착을 강화하는 비결은 엄마가 수시로 품에 안거나 안정감과 신뢰감을 쌓는 것이다. 아이의 요구에 즉각적이고 일관성 있게 반응하고 진정으로 사랑하며 신체접촉 놀이를 많이 해야 하는데 보육시설에서는 이런 노력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

미국 자아 심리학의 대표적 이론가인 에릭 에릭슨은 영아기에는 어머니와 쌓은 애정관계에서 신뢰감이 형성된다면서 생애 초기 부모의 돌봄과 사랑으로 형성되는 신뢰를 정신건강의 핵심으로 규정했다.

서강대 심리학과 안명희 교수도 가정 내 어머니의 영아 육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안 교수는 “어머니의 양육 울타리 안에서 아이는 공감과 수용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마음의 창을 연다. 모성애로 형성된 공감은 현실 좌절감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불충분한 사랑은 세상 불신, 자기 회의의 뿌리가 된다”고 지적했다.

◇ 정부 보육료에 눈멀어 ‘모성애’ 포기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포대기로 아기를 둘러업고 생활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육아법을 배우려고 하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반대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2세 이하의 영아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사례가 많이 늘어나는 실정이다.

한국의 0∼2세 영아의 보육시설 이용률은 2009년에 50.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3위로 뛰어올랐다. 2세 미만 영아는 가정보육이 바람직하며 시설이용률은 30% 미만이 적정하다는 OECD의 권고 수준을 이미 3년 전에 훨씬 초과한 것이다.

2세 이하 영아의 보육시설 이용률은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지난 3월 ‘만 5세 누리과정’을 도입하면서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영아는 부모의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보육료를 지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0-2세 영아의 보육이 사실상 국가 의무가 된 셈이다.

영아가 어린이집을 이용하지 않는 차상위계층이거나 장애가 있으면 생후 36개월 미만까지 연령별 육아수당을 받는다.

보육료는 0세 39만4천원, 1세 34만7천원, 2세 28만6천원이다. 양육수당은 0세 20만원, 만1세 15만원, 만2세 10만원이어서 지원액수만 비교하면 시설보육을 선택하는 쪽이 유리하다.

이 때문에 집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데도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지 않으면 권리를 못 찾아 먹는다는 생각에 무작정 시설에 보내는 사례가 많다.

OECD 국가 가운데 만 2세 이하 영아 시설 이용률이 50%를 넘는 곳은 덴마크(83%)와 스웨덴(66%) 두 곳뿐이다.

‘복지 천국’으로 불리는 이 두 나라는 영아의 어머니 취업률이 각각 72%, 76.5%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29.9%에 불과하다. 불가피한 사유가 없음에도 상당수 여성이 2세 이하 자식을 장시간 보육시설에 맡기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 아동수당제 신설, 육아 휴직제 보완 필요

신생아 어머니의 육아 책임감 저하, 도덕적 해이 등 문제가 생긴 것은 2세 이하 영아의 시설보육 중심의 정책을 서둘러 시행했기 때문이다.

직접 양육과 시설 보육을 균형 있게 지원함으로써 자녀 양육권을 보장했어야 했는데도 시설보육에 편중되는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정부는 영아 보육서비스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인식하고 부모 수요와 책임성을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개선책을 준비하고 있다.

맞벌이 부모의 보육 수요를 필수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어린이집 운영시간을 하루 12시간으로 유지하되 기본 보육시간은 중장기적으로 조정한다는 계획이다. 교사 근무환경 개선, 보육 품질 제고, 부모의 양육 책임성 제고 등을 위해서다.

부모들이 안정성과 저렴한 비용 등을 이유로 선호하는 국공립어린이집 비중이 5.3%에 불과한 현실도 개선 과제다.

그동안 영아 부모는 민간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주거지와 거리 제약이 있고 국공립시설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긴 탓이다.

따라서 국공립 시설 확충이 단기간에 쉽지 않다면 민간시설 영아들의 보육 서비스 수준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여성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이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직장보육제도 개선해야 한다. 보육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강력한 제재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의무 이행률은 2010년 기준으로 69.4%에 그친다. 직장 내 시설 설치는 37.5%, 수당지급 24.9%, 타어린이집 위탁계약 7.0% 등이다.

부모가 시설보육, 직접양육, 둘을 혼합한 형태 등 방식 가운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세 이하 영아에게는 어린이집 이용 여부나 부모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보육료와 양육수당을 대신할 아동수당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는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부모의 양육비 부담을 덜어주는 방편이다.

아동수당은 일정한 나이까지는 연령별로 같은 금액의 수당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아동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인 셈이다. 양육수당은 수혜 주체가 부모나 양육자여서 소득계층과 공보육 이용 여부를 기준으로 액수가 달라진다.

예산정책처는 육아휴직제도를 더욱 활성화하여 영아 부모의 직접 양육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도 했다. 지금은 6세 이하의 자녀를 둔 부모가 고용주에게 1년 이내의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고 이 기간에 통상임금의 40%를 육아휴직급여로 지급받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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