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현 금감원장 ‘야심작’ 시작 전부터 반발
최수현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야심차게 꺼내든 ‘국민 검사 청구제’를 둘러싸고 벌써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최 원장이 아이디어를 따왔다고 밝힌 감사원의 ‘국민 감사 청구제’가 도입 10년이 넘도록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 효용성을 의심하는 시선도 있다.반면, 소비자단체는 제도 도입 자체는 환영하면서도 ‘전시 행정’에 그칠 수 있다는 정반대 우려를 내놓고 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지금도 금융사 고객지원부 등에 민원상담팀이 있지만 자체 운영하는 탓에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 경우가 많다”면서 “소비자 권익 강화 측면에서 국민 검사 청구제 도입은 반길 만한 일이지만 (틀을 잘 짜)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국민 감사 청구제의 실적은 초라하다. 2002년 도입된 이후 2008년 43건에서 지난해 10건으로 오히려 급감하는 추세다.
형평성 시비도 예상된다. ‘일정한 기준과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검사 요청을 수용한다고 하지만 금감원이 수용 잣대를 주관적으로 해석,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조사만 선택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 거꾸로 이런저런 요청을 대부분 수용해줄 경우 조사 남발로 금융사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론몰이를 통한 마녀 재판으로 흐를 수도 있다.
이런 목소리는 금융 당국 안에서도 나온다. 정치적 사안과 연계되면 조사가 쉽지 않고 자칫 ‘봐주기’ 논란에 휩싸여 오히려 국민 불신을 더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국민 검사 청구제가)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다”면서 “가령 BBK사건(이명박 전 대통령의 연루 의혹이 제기된 주가조작 사건)과 같은 일이 터졌을 경우 의혹을 밝혀 달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빗발치면 검사를 안 할 수 없는데 그렇다고 제대로 파헤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설령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조사한다고 해도 금감원의 업무 한계상 (국민을 만족시킬 만한) 심층 조사를 하기도 어려워 ‘해도 욕 먹고 안 해도 욕 먹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부작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최 원장이 국민 검사 청구제를 꺼내든 것을 두고 ‘샅바 싸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둘러싼 기선 제압용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열심히 할 테니 새 조직(금융소비자보호원)을 만들어 (금감원의) 힘을 빼는 일은 하지 말아 달라는 뜻 아니겠느냐”면서 “국민 검사 청구제가 활성화되면 금소원의 역할과 일정 부분 중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 원장은 “국민 검사 수용 조건에 ‘1000명 이상 요구’ 등과 같은 구체 조건을 명시하고, 이익단체와 연관된 사안은 원천적으로 배제할 방침”이라면서 “객관성과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외부인사가 참여한 심사위원회에서 (국민 검사 수용 여부를) 최종 판단케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2013-03-2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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