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 해양안전정책 ‘하드웨어’ 있으나 ‘소프트웨어’ 부족

<세월호참사> 해양안전정책 ‘하드웨어’ 있으나 ‘소프트웨어’ 부족

입력 2014-04-28 00:00
수정 2014-04-28 07:29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해양안전계획 선진국은 사람·협업 중심한국은 하드웨어 위주…”교육훈련 있어야 공조도 가능”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온 해양안전 정책에 ‘하드웨어’는 있지만 정작 이를 운용할 ‘소프트웨어’는 부족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해양 선진국으로 여겨지는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은 중장기 계획을 통해 해양안전 인력의 역량강화나 공조체계 구축 등 운용 능력을 향상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를 통해 평소에는 안전사고 예방 관리를 철저히 하고 긴급재난사고 발생 때에는 가용 인력과 장비를 일사불란하게 투입할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해양안전은 물론 다른 모든 안전관리와 재난구조 분야에서 정책 추진방향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선진국, 해양인력 역량강화·공조체계 구축에 중점

주요 해양 선진국은 해양안전 정책의 효율적인 추진과 일관성 유지를 위해 수년 단위의 중장기 전략 계획을 수립해 운영한다.

이런 계획의 특징 중 하나는 해양안전 인력의 교육훈련 강화를 주요 과제로 삼았다는 점이다.

해양안전의 수준 향상을 위해 선원 등 해양 종사인력뿐만 아니라 검사원, 구조대 등 안전정책 집행인력의 교육훈련에도 중점을 뒀다.

미국은 해안경비대가 5년마다 짜는 ‘해양안전 성과계획’(Marine Safety Performance Plan)에서 선박 검사원 및 해양사고 조사원의 역량과 이행실적을 높이는 목표를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해양안전 분야에 우수인력을 유치하고자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내용도 담았다.

이를 통해 다른 해양 국가들이 본받고 싶어 할 해양안전 프로그램의 표본을 만들려는 게 이 계획의 비전이다.

선진국들이 전략 계획 수립에서 초점을 맞추는 다른 사안은 바로 해양안전 관련 기관과 이해관계자 간의 의사소통 강화다.

캐나다는 연방교통국에서 수립하는 ‘해양안전 전략계획’(Marine Safety Strategic Plain, 2009∼2015)에서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한 해양안전 당사자 간 의사소통 확대를 주요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해사안전국(AMSA)을 별도로 둔 호주는 2010∼2025년을 망라하는 장기계획인 ‘전략비전’(Strategic Vision)을 수립하고 별도로 4년 주기의 ‘협력계획’(Corporate Plan)을 수립해 운영한다.

해양안전 확보를 위해 정부의 모든 기관으로부터 필요한 지원을 끌어내고 이해당사자들이 긴밀한 관계를 지속하도록 하는 게 주요 목표다.

해양안전 사고예방과 재난상황 긴급대처를 위해서는 정부 기관은 물론 민간과의 협업이 필수적임을 인식한 결과다.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허드슨강의 기적’은 관계 기관 간 유기적인 협조와 재난 당국의 신속한 대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2009년 1월 승객 150명을 태운 에어버스 A320 여객기가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이륙하자마자 새떼와 충돌, 허드슨강에 불시착하자 사고를 접수한 뉴욕항만청은 구조선과 헬기를 총동원해 불시착 3분 만에 탑승자 전원을 구조했다.

◇한국도 32년 전부터 중장기 계획 수립…하드웨어 위주

한국도 1982년부터 범정부 차원의 교통안전 기본계획에 해양안전 과제를 넣어 추진해왔다.

5년 주기로 수립하는 기본계획은 도로교통은 물론 철도, 항공, 해양 등 교통체계 전반의 안전대책을 총망라한다. 중장기적 시야를 갖고 부처 간 협업 하에 교통안전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겠다는 취지다.

2012년에는 해양 분야만 별도로 범정부 차원의 국가해사안전 기본계획을 처음 수립하기도 했다. ‘대형사고 제로화’, ‘사망자 20% 감축’이라는 목표도 내걸었다.

2002∼2006년 제5차 교통안전기본계획은 ▲해양교통 종사자의 안전업무능력 향상 ▲선박·해양안전시설의 안전성 확보 ▲해양교통 안전관리 체계 정비 ▲해난 구조능력의 확충 등을 주요 추진 과제로 삼았다. 해양안전 관련 주요 과제를 모두 아우르는 셈이다.

이후 수립된 6·7차 계획도 세부 추진과제에서 차이는 있지만 이런 골격을 대체로 유지했다.

그러나 세부 과제를 들여다보면 대체로 장비 도입과 같은 하드웨어적 역량을 확충하는 데 중점을 뒀음을 알 수 있다.

5차 기본계획에서 여객선 안전 및 재난구조 관련 세부과제를 꼽아보면 ▲선원 교육·복지 지원 ▲노후 여객선 대체 ▲선박 생존성 평가기술 개발 ▲선박 자동식별시스템(AIS) 도입 ▲효과적 선박 조난통신체제 구축 ▲대형 구난함·헬기 추가 확보 등을 들 수 있다.

2007∼2011년 제6차 계획은 제5차 계획의 골자를 이어가면서 ▲해양안전종합정보시스템 구축 ▲해상교통관제시스템(VTS) 보강 ▲첨단종합상황실 구축 ▲연안여객선 안전관리 강화 등 과제를 추가했다.

2012∼2016년을 포괄하는 제7차 계획도 이런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상시착용 구명동의 개발·보급 ▲해상교통안전진단 정보관리시스템 구축 ▲해양 수색구조 장비 확충 및 기술선진화 등이 중점 추진과제다.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신규 장비나 시스템을 도입·확충하는 내용으로 분류될 수 있다.

선원교육 지원과 같은 과제는 지속적으로 추진됐으나 교육 콘텐츠나 선원의 실질적인 안전의식 제고에 대한 평가 없이 단순히 ‘연인원 2만5천명 교육 실시’ 등과 같은 피상적인 성과 평가에 그쳤다. 선원 이외에 다른 해양안전 종사자의 교육훈련에 관한 계획은 없다.

7차 계획에는 ‘민·관 협력을 통한 해양 수색구조 체계 강화’가 문구에 추가됐지만 세월호 구조 과정의 혼선에서 드러났듯이 허울뿐인 구호에 불과했다.

정부는 7차 계획에서 해양 선진국 전략계획의 주요 시사점을 직접 분석해 참고사례로 적시했으면서도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지속적인 교육훈련 있어야 공조 가능”

세월호 참사는 전형적인 인재(人災)다. 피해가 커진 데에는 제대로 초동대응을 못한 실책이 컸다는 게 한결같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초기에 현장을 진두지휘해야 할 선장은 어이없게도 먼저 도망을 가고, 재난 당국은 컨트롤타워가 없이 우왕좌왕하면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정상만 공주대 교수(한국방재학회장)는 “선상에서 사고발생 30분 이내에 사고처리가 됐어야 하는데, 전혀 안됐다”며 “평소 훈련도 없는 데다가 초기 현장을 지휘해야 할 선장은 먼저 도망했고 재난당국도 컨트롤타워 없이 혼선을 빚었다”고 비판했다.

뒤이은 대응 과정에서도 재난관련 기관 간 공조가 미숙한데다 민간 전문가들이 대거 구조에 참여했음에도 이들의 전문성과 장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평소 민간 전문가나 단체와 지속적인 의사소통으로 협업체계를 구축해놓지 않은 탓이다.

’낙하산’ 관행과 안전 불감증에 따른 선박검사 및 안전관리의 부실도 사고 발생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결국 사태를 키운 것은 통신수단의 불량이나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노후화, 구조장비의 부족 등과 같은 하드웨어 문제가 아니고 이를 운용하는 소프트웨어, 즉 사람의 문제가 되는 셈이다.

장덕훈 동국대 교수는 “기름유출 사고는 전례가 있어 경험이 있지만 여객선 사고 구조는 교육훈련도 안 해봤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공조체계 구축도 교육훈련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제 와서 또 시스템을 구축하고 상위조직을 만드는 것은 옥상옥에 불과할 수 있다”며 “’공조하라’는 말만 하지 말고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고 지속적인 교육훈련으로 공조 체제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