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전환 등 지배구조 개편도 비용 등에 ‘난감’
김상조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이 이번 주(19~24일) 재벌개혁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4대 그룹 중에서도 특히 현대차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등으로 미뤄 새 정부 재벌개혁의 초점이 총수일가 지분 많은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미미한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순환출자’ 문제에 맞춰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현대차가 두 과제를 모두 안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까지 겹쳐 말 그대로 그룹의 명운을 건 ‘큰 그림’을 조만간 내놓아야 할 처지다.
업계와 증권가에서는 ‘규제 대응’과 ‘후계 구도’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대안으로 지주회사 전환 등의 시나리오가 거론되지만, 최소 수조 원에 이르는 지분 정리 비용과 관련 계열사 주주들의 반발 등을 고려할 때 이마저도 실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되면 현대글로비스·이노션 ‘표적’
김상조 위원장은 지난달 인사청문회 자료 등을 통해 “취임 이후 고시 개정을 포함해 일감 몰아주기 관련 제도 전반을 개선하고 기업집단국을 신설, 대기업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를 제대로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재계는 현재 ‘총수일가 지분 30%’인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계열사(상장사)의 기준이 ‘총수일가 지분 20%’로 강화되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제 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에 속한 계열사의 경우 총수일가 지분이 20%만 넘어도, 다른 계열사와 내부거래를 통한 부당 지원 여부를 집중적으로 감시받는다는 얘기다. 수혜 계열사의 매출 중 특수관계 법인(다른 계열사) 비중이 30%를 넘고 수혜 계열사의 지배주주·친족의 직간접 지분율이 3%를 넘으면 일감 몰아주기 이익에 대한 증여세도 내야 한다.
이처럼 기준이 강화되면 현대차그룹의 경우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물류 계열사 현대글로비스와 광고 계열사 이노션이 다시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앞서 2015년 2월 당시 새 일감 몰아주기 규제 기준(총수일가 지분 30%) 적용을 앞두고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부자는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을 통해 현대글로비스 지분 13.5%를 팔았다. 또 정 부회장은 이노션 지분도 8% 처분해 절묘하게 두 회사에 대한 총수일가 지분율을 29.9%로 맞추고 규제를 피했다.
하지만 김상조 위원장이 청문회에서 직접 “상장사 규제 지분율 기준인 30% 문턱을 피하려고 29.9%로 맞추면서 편법으로 규제를 벗어난 기업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고,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지난 8일 일감 몰아주기 사례 대기업으로 롯데, 하림과 함께 현대글로비스를 지목한 만큼 정 회장 일가로서는 조만간 내부거래를 줄이거나 추가로 지분을 매각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현재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정의선 부회장이 23.2%, 정몽구 회장이 6.7%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노션의 경우 대주주가 정몽구 회장의 딸 정성이 고문(27.9%)이고, 정 부회장(2%)까지 총수일가의 전체 지분율은 29.9%다.
또 현대글로비스와 CEO스코어 등에 따르면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 매출 중 계열사 비중은 지난해 기준으로 70%, 54%에 이른다.
◇ 4개 순환출자 고리도 과제…해소에 4조~11조원 필요
김상조 위원장은 지난달 문재인 정부 10대 공약에 ‘재벌 순환출자 해소’가 포함되지 않은 것과 관련, “5년 전 선거를 치를 때는 14개 그룹, 9만8천 개 순환출자 고리가 있었는데, 지난해 기준으로는 8개 그룹 96개, 최근에는 7개 그룹 90개 고리만 남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순환출자가 총수일가의 지배권 유지·승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룹은 현대차그룹 하나만 남았다”고 콕 짚어 말했기 때문에, 현대차 입장에서는 이 부분 역시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과제’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4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다. 주요 순환출자 고리는 ‘현대차-기아차-모비스-현대차’, ‘현대차-기아차-현대제철-모비스-현대차’, ‘현대차-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현대차’ 등으로, 이 구조를 통해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주력 계열사 현대차에 대한 낮은 지분율(각 5.17%, 2.28%)만으로도 전체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가장 확실하고 단순한 방법은 총수일가가 계열사에 대한 지분을 사재로 사들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한국투자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기아차의 현대모비스 지분(16.9%)을 정의선 부회장 등 총수일가가 사들이는 데만 4조 원, 현대모비스의 현대차 지분(20.8%)을 매입하는 데는 7조2천억 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이미 앞서 삼성, 롯데 등 다수의 대기업에서 총수일가가 최소한의 개인 비용으로 그룹 지배력을 키우기 위해 계열사 간 합병이나 지주회사 전환 등의 방식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증권업계에서는 현재 정의선 부회장의 그룹 승계까지 고려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들이 난무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현대차·기아차·모비스를 각각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누고, 3개 투자회사를 합친 ‘지주회사’를 세워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방식이다.
롯데가 현재 롯데제과·롯데쇼핑·롯데칠성·롯데푸드 등 4개 유통·식품 계열사의 기업분할(사업·투자회사)과 합병을 통해 ‘롯데지주 주식회사’ 설립을 추진하는 것과 똑같은 형태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이 시나리오에 필요한 비용이 1조7천억원으로 다른 시나리오보다 적기 때문에 가장 현실적”이라는 분석을 내놨지만, 앞서 한국투자증권은 이 방식에 대해 “실제 합병 시점까지 총수일가 지배력에 공백이 생기고, 개별 3사의 주총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며 실현 가능성을 낮게 봤다.
이 밖에도 현대차 분할, 기아차 분할, 모비스 분할, 모비스-글로비스 합병 등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돈이다. 증권업계는 시나리오에 따라 그룹 차원에서 많게는 11조 원(현대차 분할), 적게는 4조 원(모비스 분할)에 이르는 지배구조 개편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그룹 안팎 “순환출자 구조 줄이고, 승계 과정 투명하게” 조언
하지만 재원 등 여러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국 재계 서열 2위, 글로벌 자동차그룹으로서 현대차가 어떤 형태로든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아차 투명경영위원장을 지낸 남상구 고려대 명예교수(현 기아차 사외이사)는 “기본적으로 순환출자 구조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고, 정부도 이 부분을 요구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지주회사 전환에 대해서는 “지주회사 방식이 많이 거론되지만, 지주회사 방식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며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전체 그룹을 지배한다는 문제는 지주회사 방식에서도 남아있을 수 있다. 그래서 현재 지주회사 요건 강화가 거론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재 국회에 계류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의무 보유 기준을 상장사의 경우 20%에서 30%로, 비상장사의 경우 40%에서 50%로 높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총수일가의 지배를 받는 지주회사가 너무 쉽게 자회사를 거느릴 수 없도록 막자는 취지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비율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같은 방향의 규제 강화를 약속했다.
따라서 현대차가 지주회사 전환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에 작업을 서두르는 게 유리한 상황이다.
남 교수는 “지주회사 방식이나, 직접 매입을 통한 지분 정리 방식이나 모두 막대한 돈이 들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에 밖에 없다”며 “(현대차로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정책팀장은 “조만간 발표될 재벌 개혁에서 순환출자 문제보다 공정위가 고시 개정 등만을 거쳐 바로 규제에 들어갈 수 있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더 강조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권 팀장은 “논란이 많지만 삼성은 일단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으로 1차 승계 작업을 마무리지었다”며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부회장 승계 절차가 남아있고, 이 과정에서 편법(일감 몰아주기)을 통해 정 부회장의 지배력을 키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주요 재벌 가운데 가장 주목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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