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대책에도 ‘돈 되면 산다’…넘치는 유동성, 부동산 ‘기웃’

8·2대책에도 ‘돈 되면 산다’…넘치는 유동성, 부동산 ‘기웃’

입력 2017-09-17 11:31
수정 2017-09-1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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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재건축 다시 꿈틀, ‘로또’ 아파트 청약 대박·‘로또’ 토지에 뭉칫돈

전문가 “내달 추가 대책 앞둬 본격 상승은 무리”…양극화 심화될 듯

8·2 부동산 대책 여파로 서울지역 주택 거래가 위축된 가운데, 확실한 시세 차익이 보장되는 ‘돈 되는 상품’에 대한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는 작은 호재에 다시 들썩일 조짐이고, 시세보다 분양가를 낮춘 강남 등 요지의 새 아파트는 이전보다 청약 경쟁률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전매 제한 등 정부 규제에서 피해 있는 기업도시 토지 분양에는 수천억원대의 청약금이 몰리는 등 ‘투기장’을 방불케 한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 의지에도 불구하고 시중의 갈 곳 없는 막대한 유동자금이 여전히 부동산 시장에 머물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정부의 규제 강도가 세질수록 인기지역(상품)과 비인기지역 간 시장 차별화 현상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잠실 50층’이 밀어 올린 강남 재건축 가격

8·2 대책의 직격탄을 맞았던 강남 재건축 시장은 ‘잠실 주공5단지’의 3개동 50층 재료에 힘입어 하락세를 멈추고 다시 상승하고 있다.

17일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 재건축 가격은 0.11% 올랐다. 재건축 아파트값이 상승한 것은 8·2 대책 여파로 8월 11일(-0.25%)부터 5주 연속 하락 내지 보합을 기록한 이후 6주 만에 처음이다.

잠실 주공5단지는 지난 7일 잠실역 사거리에 짓는 아파트 3개 동에 최고 50층 높이의 재건축이 허용되고 정비계획 통과가 임박하면서 현재 호가가 8·2 대책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이 아파트 112㎡는 50층 허용 이후 15억5천만원짜리 매물이 거의 소진된 이후 현재 15억5천만∼16억원에 매물이 나온다. 이는 8·2 대책 이전 역대 실거래 최고가(15억7천만원)보다 높은 것이다.

119㎡는 50층 허용 이후 16억8천만∼16억8천500만원에 거래된 후 현재 17억원 이상에 매물이 나오고 있다. 역시 8·2 대책 발표 전인 7월 하순 17억2천만원에 팔린 역대 최고가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잠실 주공5단지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50층 재건축이라는 상징적 의미에다 재건축 정비계획이 사실상 통과된 것이어서 가격이 강세”라며 “다만 단기간에 호가가 급등하면서 매수자들은 부담스러워 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잠실과 달리 고층 재건축이 허용되지 않고 있는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가격이 오르긴 마찬가지다.

정부의 가계부채대책, 주거복지로드맵 등 추가 대책 발표가 추석 이후로 연기된 사이, ‘잠실 호재’를 틈타 다시 관망하던 매수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아파트 102㎡의 경우 이달 초까지만 해도 12억3천만∼12억5천만원에 팔렸으나 최근 13억원까지 거래됐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대치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잠실 주공5단지의 거래가격이 급등하면서 은마아파트로 투자수요가 넘어오는 경우도 있다”며 “49층 재건축이 어렵더라도 일단 재건축을 추진 중인 상황이어서 집주인들은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고, 일부 거래도 이뤄진다”고 말했다.

8·2 대책 이후 약세였던 강남구 개포 주공1단지와 강동구 둔촌 주공아파트도 최근 매물이 회수되고 호가가 최고 2천만∼3천만원가량 상승했다.

개포 주공1단지 42㎡의 경우 11억8천만원에 나오던 매물이 지난주 12억원으로 2천만원 올랐고, 13억원이던 49㎡는 지난주 13억3천만원으로 호가가 올랐다.

개포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잠실 훈풍에다 개포 시영 아파트의 일반분양분 청약이 성공하면서 집주인들이 호가를 올려서 내놓고 있다”며 “거래가 별로 없는데도 집주인들이 막연한 기대감에 가격을 올린다”고 말했다.

◇ 7천억원 몰린 로또토지, 청약과열 로또아파트…풍선효과

이른바 ‘로또 아파트’로 불린 강남권 재건축 일반분양분에는 청약 과열이 빚어지고 있다.

서초구 잠원동 한신6차 재건축 ‘신반포센트럴자이’는 1순위 청약에서 평균 168대 1, 최고 510대 1의 경쟁률을 나타내며 올해 들어 수도권 최고 경쟁률 기록을 세웠다.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분양가를 3.3㎡당 평균 4천250만원으로 제한하면서 당첨만 되면 3억원 안팎의 시세 차익이 가능하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 아파트의 중소형 주택형 당첨자 청약 가점은 무려 69∼78점에 달했다.

강남구 개포 시영 아파트 재건축 사업인 ‘래미안 강남포레스트’도 또다른 ‘로또’로 불리면서 평균 40대 1, 최고 234대 1의 높은 경쟁률로 1순위에서 마감됐다.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박원갑 수석전문위원은 “새 아파트에 대한 선호현상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데, 강남 아파트 재건축 일반분양분은 공급 물량도 적어 청약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며 “중도금 대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인기 단지에는 여전히 청약자들이 몰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분양가가 10억∼20억원대에 이르는 강남권 아파트에 가점제 고득점자가 대거 몰린 것을 두고 투자수요가 대거 몰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청약가점이 70점을 넘으려면 40대 이상의 가장이 15년 이상 무주택으로 살면서 대가족이 한집에 살아야 나올 수 있는 점수”라며 “아무리 시세보다는 싸더라도 강남의 높은 분양가를 고려했을 때 투자수요가 시세 차익을 노리고 청약한 경우가 많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 무풍지대인 민간 택지분양에는 ‘청약 광풍’이 불었다.

지난 13∼15일 분양한 강원도 원주기업도시 사업지구 내 점포겸용 단독주택용지는 청약 기간 내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며 48개 필지 분양에 총 13만9천977건이 접수됐다. 이 토지의 필지당 청약금이 50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사흘 만에 7천억원의 뭉칫돈이 몰린 것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분양하는 공공택지 내 점포겸용 단독주택지는 ‘사업지구가 속한 지역에 거주하는 세대주’로 청약자격이 강화됐지만 민간택지인 기업도시는 이런 규제없이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무제한으로 신청할 수 있다.

부동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첨만 되면 5천만∼1억원의 단기 시세 차익이 가능하다는 소문이 돌면서 한 사람이 30∼40건씩 청약한 경우도 있다”며 “계약 후 한 달만 지나면 매매가 가능해 전국 단위의 ‘단타족’들이 많이 몰렸다”고 말했다.

분양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분양에서도 최고 경쟁률이 6천300대 1에 달했지만 올해는 작년보다 경쟁이 훨씬 더 치열해졌다”며 “8·2 대책으로 갈 곳 없는 여유 자금들이 이쪽으로 쏠린 것 같다”고 말했다.

◇ 넘치는 유동성, 부동산 진입 노려…추가 대책 앞둬 단기 상승 어려울 듯

전문가들은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에 자금이 몰려드는 것은 세계적인 유동성 장세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부동산114 함영진 리서치센터장은 “시중의 유동자금이 1천조원에 달한다는데, 예금 금리는 너무 낮고 주식시장은 불안하다”며 “8·2 대책 발표 이후 갈 곳을 잃고 헤매던 돈들이 당분간 보유세 인상을 하지 않겠다는 경제부총리의 소신 발언으로 호시탐탐 부동산 진입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박원갑 전문위원도 “부동산 투자로 재미를 본 베이비부머들은 은퇴 이후에도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싶어 한다”며 “부동산 시장에 대한 잠재적인 수요들은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일부 상품의 과열현상에도 불구하고 당장 전반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8·2 부동산 대책의 양도소득세 중과 조치는 내년 4월부터 작동하고, 다주택자는 물론 실수요자들의 대출까지 옥죄는 가계부채대책과 임대주택 등록 의무화·전월세 상한제 등의 장기 계획을 담은 주거복지로드맵 등 추가 대책도 다음달 발표된다.

무엇보다 집값이 잡히지 않으면 정치권을 필두로 보유세 인상 등 추가 카드도 꺼낼 태세여서 가격이 오르긴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는 “내년부터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시행되고 가계부채대책, 금리 인상 등 악재가 많다”며 “내달 추가 대책 나오면 단기적으로 가격이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연구위원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시행되면 양도차익이 많은 강남 등 서울 중심지가 아니라 서울 외곽, 수도권, 지방의 집부터 먼저 팔 수밖에 없어서 서울 중심지보다 외곽이 더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며 “인기지역보다 비인기지역의 집값이 하락하고 청약시장에도 인기 아파트에만 몰리는 양극화가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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