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을 걷다 보면 손에 지도를 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일본인 관광객과 흔히 마주친다. 을지로 지하보도에서는 지하철역 이름을 확인하고, 승차권을 사려는 일본인들이 많다. 자기들끼리 궁리를 하지만 잘 몰라 당황하는 광경은 일상사다. 노선도에 쓰여 있는 한자와 영어를 퍼즐하듯 끼워 맞추는 모습이 안쓰럽다.
한번은 내가 일본 관광객이라고 가정하고 지하철역·명동·인사동·소공동·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을 둘러본 적이 있다. 상점들이 내건 안내판을 제외하고 일본인 관광객용 공공 안내표지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일본인 관광객에게 한국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나라라고 낙인찍힐 법하다. 한국은 일본인 개별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기에 불편한 나라일 수도 있다.
일본의 대도시와 비교된다. 근래 히로시마와 후쿠오카에 잠깐 다녀왔는데 ‘놀랄 노’ 자였다. 공항은 물론 기차역이나 버스센터, 전철역 등 공공시설물과 주요 관광지에는 어김없이 한글 안내판이 붙어 있다. 히로시마 시내에서 좀 떨어진 현대미술관에 가려고 전철을 탔는데, 도착한 전철역 이름 아래 ‘히로시마 현대미술관 앞’이라고 한글로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뿐 아니었다. 한국 사람들이 다닐 만한 곳에는 역 이름을 한글로 적어 놓고, 주변 관광지를 안내하고 있다. 도쿄도 아니고, 오사카도 아니다. 한국 관광객이 얼마나 가기에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안내판을 세워 놓았을까. 그들의 배려에 감탄한 것이 아니다. 앞서가는 장삿속이 부러울 뿐이다.
통계는 이렇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은 305만명으로 전체 외래 관광객의 39%를 차지했다.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159만명으로 전체의 23% 정도였다. 두 나라 는 서로 최대의 관광 상대국이다.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도 5년 전 58만명에서 지난해 134만명으로 늘어났다. 앞으로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복수비자 발급 대상이 확대되고, 개별관광 및 단체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하면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중요한 점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일본인과 중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중국인은 아직 단체관광 위주여서 불편이 덜하리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이 아니다. 한국관광공사 조사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이 꼽는 한국 관광 불만 1위는 ‘중국어 안내표지판이 부족하다’였다. 53%가 안내표지판 부족을 지적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 ‘물가가 비싸다’, ‘교통이 혼잡하다’ 등 다른 불만사항을 압도적으로 눌렀다.
G20 정상회의가 코앞이다. 회의 유치 도시인 서울시는 ‘내가 바로 서울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이 기간에 서울을 찾는 1만명 이상의 외국인들에게 디자인 도시로 특화된 서울을 알린다는 계획이다. 중국어와 일본어 안내방송 역을 50개로 늘렸다.
부산과 경주, 제주 등 다른 지자체들도 외국인의 눈높이에 맞추는 도시 브랜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동해시는 일본과 러시아를 운항하는 선박이 많은 점을 고려해 일본어와 러시아어를 도로표지판과 관광안내판에 함께 적었다.
영어 표지판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일본어 표지판의 등장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주로 기성세대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요즘 젊은이들은 영화와 음악·드라마·만화를 통해 소통한다.
축구를 보라, 야구를 보라. 그들의 극일(克日)은 다른 방식으로 이뤄진다. 우리도 실속을 차려야 한다.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일본어와 중국어 공공 안내표지판은 관광객 유치용일 뿐이다. 일본이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한글 안내판에 이어 중국어 안내판을 내건 까닭을 곱씹어야 한다. 이참에 전국 주요 도로표지판과 관광안내판에 한글과 영어·일본어와 중국어를 함께 적는 방안을 정부 차원에서 추진했으면 한다.
joo@seoul.co.kr
노주석 논설위원
일본의 대도시와 비교된다. 근래 히로시마와 후쿠오카에 잠깐 다녀왔는데 ‘놀랄 노’ 자였다. 공항은 물론 기차역이나 버스센터, 전철역 등 공공시설물과 주요 관광지에는 어김없이 한글 안내판이 붙어 있다. 히로시마 시내에서 좀 떨어진 현대미술관에 가려고 전철을 탔는데, 도착한 전철역 이름 아래 ‘히로시마 현대미술관 앞’이라고 한글로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뿐 아니었다. 한국 사람들이 다닐 만한 곳에는 역 이름을 한글로 적어 놓고, 주변 관광지를 안내하고 있다. 도쿄도 아니고, 오사카도 아니다. 한국 관광객이 얼마나 가기에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안내판을 세워 놓았을까. 그들의 배려에 감탄한 것이 아니다. 앞서가는 장삿속이 부러울 뿐이다.
통계는 이렇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은 305만명으로 전체 외래 관광객의 39%를 차지했다.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159만명으로 전체의 23% 정도였다. 두 나라 는 서로 최대의 관광 상대국이다.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도 5년 전 58만명에서 지난해 134만명으로 늘어났다. 앞으로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복수비자 발급 대상이 확대되고, 개별관광 및 단체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하면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중요한 점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일본인과 중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중국인은 아직 단체관광 위주여서 불편이 덜하리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이 아니다. 한국관광공사 조사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이 꼽는 한국 관광 불만 1위는 ‘중국어 안내표지판이 부족하다’였다. 53%가 안내표지판 부족을 지적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 ‘물가가 비싸다’, ‘교통이 혼잡하다’ 등 다른 불만사항을 압도적으로 눌렀다.
G20 정상회의가 코앞이다. 회의 유치 도시인 서울시는 ‘내가 바로 서울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이 기간에 서울을 찾는 1만명 이상의 외국인들에게 디자인 도시로 특화된 서울을 알린다는 계획이다. 중국어와 일본어 안내방송 역을 50개로 늘렸다.
부산과 경주, 제주 등 다른 지자체들도 외국인의 눈높이에 맞추는 도시 브랜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동해시는 일본과 러시아를 운항하는 선박이 많은 점을 고려해 일본어와 러시아어를 도로표지판과 관광안내판에 함께 적었다.
영어 표지판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일본어 표지판의 등장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주로 기성세대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요즘 젊은이들은 영화와 음악·드라마·만화를 통해 소통한다.
축구를 보라, 야구를 보라. 그들의 극일(克日)은 다른 방식으로 이뤄진다. 우리도 실속을 차려야 한다.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일본어와 중국어 공공 안내표지판은 관광객 유치용일 뿐이다. 일본이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한글 안내판에 이어 중국어 안내판을 내건 까닭을 곱씹어야 한다. 이참에 전국 주요 도로표지판과 관광안내판에 한글과 영어·일본어와 중국어를 함께 적는 방안을 정부 차원에서 추진했으면 한다.
joo@seoul.co.kr
2010-10-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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