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리라화 또 사상 최저…남아공 랜드화 5년래 최저
미국의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와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에 따른 신흥국의 통화 가치 하락세가 27일(현지시간)에도 이어졌다.아르헨티나의 페소화에서 시작된 통화 절하는 터키 리라화, 남아공 랜드화, 러시아 루블화 등 다른 신흥국으로도 확산했고 인접국으로 전염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터키 리라화 = 리라화는 27일 장중 달러당 2.36리라까지 떨어져 사상 최저치 기록을 또 갈아치웠다. 리라화 가치는 지난달 18일 미국의 테이퍼링 결정 이후 15% 가까이 떨어졌다.
리라화는 이날 11일 연속 하락세를 지속해 1996년 이후 최장 연속 하락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다만 중앙은행이 28일 오후에 임시 통화정책위원회를 소집해 리라화 가치를 안정시킬 필요한 조치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힌 이후 하락세가 다소 진정된 달러당 2.30리라로 마감했다.
터키는 지난달 17일 터진 ‘비리 스캔들’로 정국 혼란이 겹쳐 다른 신흥국 통화보다 가파른 절하 추세를 보이고 있다.
◇아르헨티나 페소 = 금융 웹사이트인 암비토에 따르면 페소화는 27일 오전에도 달러당 8페소 이상에 거래돼 지난 주말 달러당 8페소에서 소폭 약세를 보였다.
페소화 가치는 지난주에만 18% 떨어졌다. 아르헨티나 경제가 사상 최악의 위기를 겪던 2002년 이후 최대 낙폭이다.
페소화 급락은 높은 물가 상승률과 페소화의 추가 하락이 예상돼 당국이 외환보유액으로 환율을 더는 방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외화보유액은 지난 주말 290억6천만 달러를 기록해 지난주에만 7억 달러 줄었다. 외화보유액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2011년에는 520억 달러였다.
외환규제의 불확실성도 페소화 하락의 배경이다. 지난 2011년 자본유출을 막고자 외환규제를 도입한 이후 공식 환율(달러당 8페소)과 암시장 환율(달러당 12.85페소) 간 괴리가 심화했다.
정부는 23일에는 달러화의 유출을 억제하고자 개인의 전자상거래를 제한한다고 밝혔으나 다음 날에는 개인의 예금과 여행목적의 달러 매입을 허용한다며 규제를 완화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정책이 혼란을 키우는 것으로 분석됐다.
페소화 급락에 인접국 브라질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전날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신흥국 통화위기에 공동대응하는 방안을 협의했다.
다만 호세프 대통령은 페소화 급락이 브라질로 전염될 것이란 우려에 “아르헨티나 상황이 브라질 경제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브라질 중앙은행도 브라질이 순채권국이고 외화보유액은 3천750억 달러를 넘는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브라질 경제는 아르헨티나 외환시장 혼란에 흔들릴 만큼 취약하지 않다”고 밝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 = 랜드화는 이날 오전장에서 달러당 11.19랜드를 기록해 지난 2009년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경제일간지 비즈니스데이 인터넷판은 랜드화 가치가 지난 20일 이래 1주일 동안 3% 이상 하락했다고 전했다. 지난 24일에는 달러당 11.11랜드를 기록해 기존 10랜드 벽을 처음으로 돌파했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정책에 따른 신흥국 통화의 약세와 함께 지난 23일부터 백금 광산 근로자들의 파업도 작용한 것으로 현지 언론은 분석했다.
경제일간지 비즈니스리포트는 미국발 요인뿐 아니라 백금 광산의 파업도 시장에서 랜드화를 매각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게 분명하다며 이런 요인들이 남아공의 올해 경제성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랜드화의 평가절하가 제조산업의 수출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다른 전문가의 의견도 덧붙였다.
백금 광산 근로자들이 5일째 파업을 벌이는 가운데 정부 주재로 노사 임금 협상이 진행되고 있으나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루블화 = 루블화도 다른 신흥국 통화처럼 절하가 이어졌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27일 익일 유로화 대비 루블화 환율을 전날보다 59.77코페이카(루블 아래 단위) 오른 47.496 루블로 고시했다.
달러화 대비 루블화 환율도 44.93코페이카 오른 34.709 루블로 확정했다. 중앙은행 고시 환율은 기업의 결제나 자산가치 평가 기준으로 적용된다.
유로화 대비 루블화 환율은 앞서 지난 24일 2009년 2월 세워진 역대 기록인 유로당 47.25 루블을 넘어 47.258 루블까지 치솟은 뒤 지속적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주 2012년 6월 이후 처음으로 34루블을 넘어선 달러화 대비 루블화 환율도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며 2009년 초 세워진 역대 기록(달러당 36.73 루블)에 근접해 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달러화 대비 루블화 환율이 조만간 35루블 선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일부에선 연말 안에 달러당 40루블까지 상승할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루블화 약세에는 미국의 테이퍼링 외에도 환율 변동을 보다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 환율 개입을 자제하려는 러시아 중앙은행의 정책도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최근 러시아 중앙은행은 2015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변동환율제 도입을 앞두고 인위적인 환율 개입 활동을 줄여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인도 루피화 = 루피화 가치도 27일 오전 한때 달러당 63.32 루피로 떨어져 작년 11월 14일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로써 루피화 가치는 사흘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움직임에 따른 일부 신흥국 통화 약세 여파에다 인도 중앙은행(RBI)이 다음날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데 따른 것으로 풀이됐다.
인도 증시도 여타 아시아 국가의 증시와 마찬가지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센섹스 지수는 이날 426.11 포인트(2.02%)나 빠진 20,707.45에 장을 마감했다. 니프티 지수도 130.90 포인트(2.09%) 하락한 6,135.85를 기록했다.
그러나 P. 치담바람 인도 재무장관은 “인도 경제의 펀더멘털이 매우 강하다”며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신흥국 위기 선진국으로 전염되나 = 신흥국의 금융불안이 단계적으로 선진국으로 전염될 우려도 제기됨에 따라 27일 런던 증시의 FTSE100 지수는 장중 1.8% 급락했다.
유로존의 재정위기국인 그리스의 국채 가격도 하락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그리스 국채 10년물의 수익률은 이날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신흥국의 금융불안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경제 회복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의 예룬 데이셀블룸 의장은 강조했다.
데이셀블룸 의장은 이날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신흥국의 금융 불안이 유로존으로 전염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크리스티앙 누아예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도 유로존으로 위기가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누아예 총재는 “신흥국 일부 국가의 위기가 유럽에 부분적이나마 충격을 줄 근거가 없다. 그들(신흥국)은 신속하게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옌스 바이트만 독일 분데스방크(중앙은행) 총재는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은 시장 개혁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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