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차례 박수 속 긴장감…공화는 공통주제에만 기립박수일부 의원들 ‘파리 테러’ 언급 때 ‘노란 연필’ 들기도
지난해 ‘11·4 중간선거’에서 패배해 상·하원 모두를 야당 공화당에 내준 ‘레임덕 대통령’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밤 미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장에서 한 새해 국정연설에서 더 강하고 더 공격적으로 앞으로 남은 2년간 추진할 자신의 역점 정책을 제시했다.
각종 경제지표 호조와 더불어 1년 8개월 만에 50% 지지율을 회복한 덕분인지 자신감 넘친 모습을 보였다.
”미국 경제가 침체로부터 일어섰다”고 자평한 오바마 대통령은 커뮤니티 칼리지 학비 무료화, 부자증세를 골자로 한 세법 개정 등의 국내 정책은 물론 이란에 대한 미국의 외교가 성과를 내고 있다는 등의 대외 정책을 거론하며 앞으로도 자신의 노선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도중 4번에 걸쳐 ‘의회가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거나 ‘의회에 촉구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화당 주도의 미 의회를 압박했다. “정치만 걸림돌이 되지 않으면 중산층을 위한 경제 정책은 제대로 작동한다”며 공화당의 ‘발목잡기’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거부권’(veto)이라는 단어도 두 번에 걸쳐 언급했다. 특히 공화당 주도의 대(對) 이란 추가제재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더라도 거부하겠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이와 동시에 “오늘 밤 내가 제시한 비전에 공감하면 함께 손을 잡고 일하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공감하는 부분에서만큼은 함께 일하자”며 공화당의 협력도 요청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 관련 발언이 나올 때마다 민주당 의원들이 기립박수를 치거나 함성을 낸 데 비해 공화당 의원들은 굳은 표정으로 정면만을 응시했다.
연설 초반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 봉사한 이들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한다”고 말했을 때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이 대부분 기립박수로 답해 이날 국정연설에서만이라도 여야가 화합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게 아니냐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연설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공화당 의원들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갔고, 의회 건물 밖 온도가 섭씨 2℃로 그다지 춥다고 할 수 없었음에도 본회의장 안에는 싸늘함마저 느껴졌다.
연설 말미에 오바마 대통령이 “내가 더이상 나설 선거 캠페인이 없다”고 말하면서 근엄하게 앉아있던 공화당 의원들 일부에서 갑자기 박수가 터져 나왔고 이에 오바마 대통령이 “나는 두 번 다 이겼다”고 받아치면서 본회의장 전체가 웃음바다로 변하기도 했으나 연설 내내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뒤에 앉아 있던 공화당 1인자 존 베이너(오하이오) 하원의장은 연설 내내 환하게 웃는 표정을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바로 옆에 앉은 조 바이든 부통령과는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모습도 보였다.
국정연설에서 ‘초당파적’이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왔지만 이날 국정연설이 초당파적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화당 의원들은 쿠바에 5년간 수감됐다 작년 말 극적으로 풀려난 앨런 그로스를 언급할 때 등 여야가 대립하지 않는 사안에 대해서만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런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의 파리 주가지 테러를 언급할 때 그웬 무어(민주·위스콘신) 하원의원 등 일부 의원들이 언론 자유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노란 연필’을 들어 올리거나 흔들어 보여 주목을 끌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연설 동안 박수는 총 86번이 나왔다. 중산층 단어는 7번, 경제 용어는 18번, 테러 관련 언급은 9번이 각각 거론됐다.
한편,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 중 한 명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리더십보다는 정치에 더 관심을 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