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국 건국 이전 수차례 도굴된 상태”
’대운하 건설’, ‘고구려 침공’ 등으로 잘 알려진 수(隋)나라 양제(煬帝)의 최종 매장지가 중국 장쑤성 양저우시에서 발견됐다고 현대쾌보 등 중국언론들이 17일 보도했다.국가문물국과 중국고고학회는 전날 양저우에서 ‘수양제묘 발굴성과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3월 양저우시 시후(西湖) 진에서 발견된 두 개의 벽돌 고분이 수양제 양광(楊廣)과 소(蕭)황후의 최종 매장지역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역사기록에 따르면 양제는 대업(大業·양제의 연호) 14년이던 618년 양저우에서 부하에게 살해당했고 그의 매장지는 당조(唐朝) 등을 거치면서 세 차례 옮겨졌다.
이 무덤에서는 발굴 초기부터 ‘수고양제묘지’(隋故煬帝墓誌)라는 글귀가 나오고 묘지에 적힌 사망시간도 ‘대업 14년’으로 돼 있어 수양제의 최종 매장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왔다.
국가문물국은 이 고분에서 옥대 13개 등을 포함해 대량의 수장품과 남성 치아 두 개, 여성 유골이 발굴됐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10만9천㎡의 매장지에서 고분 흔적 136개, 도랑 2개, 벽돌터 1개, 우물 5개, 구덩이 29개 등이 발굴됐다. 그러나 매장소가 있는 릉은 아직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문물국은 수양제 무덤이 이미 수차례 도굴을 당해 많은 유물이 사라진 상태였으며 도굴시기는 중화민국(中華民國) 성립(1912년) 이전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수나라 제2대 황제(569∼618)인 양제는 대운하(大運河) 등 초대형 토목공사를 무리하게 추진하고, 100만 명이 넘는 대군을 일으켜 세 차례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가 실패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수양제는 생전에 체계적으로 법령을 정비했으며 그가 추진한 대운하 개통은 결국 강남·북의 물류망을 연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점 등 때문에 단순히 악정만을 일삼은 황제는 아니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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