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파먹는 인간과 핥아주는 동물… 누가 나은가

서로 파먹는 인간과 핥아주는 동물… 누가 나은가

입력 2013-04-27 00:00
수정 2013-04-2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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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새 장편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출간

김숨은 새 장편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을 시종 두 여자 사이의 기괴한 긴장으로 끌고 간다. 하나는 홈쇼핑 콜센터에서 일하며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과 고객들의 거친 언사에 몸을 뜯기는 며느리이고, 또 하나는 돈 버느라 바쁜 아들 내외의 집에 내색 없이 끌려와 살림과 육아를 도맡는 시어머니다.

의견이랄 것도 없이 짜장면이든 짬뽕이든 시켜주는 대로 먹으며 부지런히 살림하고 자식을 키워주는 시어머니를 며느리는 끝없이 하대한다. 직장에서 친절, 또 친절을 강요당하며 목숨을 부지하는 며느리는 속내를 내보이지 않는 시어머니를 잉여인간 취급하며 언행을 삼가지 않는다.

소설은 고부 갈등의 외형을 띠지만 작가는 줄곧 며느리를 ‘그녀’로, 시어머니를 ‘여자’로 호칭하며 통속의 고부관계에서 두 여자를 떼어낸다. 40평 아파트의 인생과 18평 아파트의 인생이 절대 같을 수 없다고 믿는 ‘그녀’는 남들만큼 살고 남들만큼 자식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강박 아래 ‘여자’에 대한 착취를 합리화한다.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한나절도 견디지 못하는 ‘그녀’가 구강건조증으로 식욕을 잃고 날로 여위어가는 ‘여자’의 고통을 끝내 외면하고 약값을 걱정할 때 ‘여자’는 말한다. “동물들이 서로의 상처를 혀로 핥아주는 행위가 외려 고등한 행위가 아닌가 싶다”고.

작가는 시어머니라는 자리 하나만으로도 어른 행세할 수 있던 시절에 한 맺힌 며느리들의 하소연으로 끝나기 일쑤였던 고부의 이야기를 자본주의의 한복판에 재배치한다.

작가의 질문은 간단하지만 답하기 쉽지 않다. 각자의 상처를 혀로 핥아줄 줄도 모르면서 인간이 이만한 진화를 이룬 것, 진화하다 못해 자본주의에 꽁꽁 묶여 서로 파먹고 살게 된 것이 무슨 소용인지에 대한 냉랭한 질문이다.

딱한 것은 ‘그녀’에게 아들이 있어서 ‘그녀’ 역시 언젠가 ‘여자’처럼 시대의 욕망에 철저히 몸을 내맡긴 며느리를 맞닥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설 말미 ‘여자’의 괴이한 선택이 ‘그녀’의 운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현대문학. 317쪽. 1만3천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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