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끓는 청춘’에서 학교 일진 영숙 역
영화 ‘피끓는 청춘’(감독 이연우)에서 농고 일진 영숙 역을 연기한 배우 박보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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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아버지를 찾아 나선 사연 많은 딸(’과속 스캔들’), 병약하지만 새침한 소녀(’늑대소년’).
이 두 영화로 1천500만 관객을 동원한 배우 박보영. 여배우로는 드물게 충무로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여배우다.
나이답지 않은 역할과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오가며 변신을 거듭하던 그가 또 한 번 껍질을 깼다. 이연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피끓는 청춘’이란 하이틴로맨스를 통해서다.
영화 ‘피끓는 청춘’은 1980년대 충남 홍성을 배경으로 전설의 카사노바 중길(이종석)과 그를 짝사랑하는 영숙(박보영)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80년대 정서를 고스란히 전하면서도 하이틴로맨스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 상업영화다.
영숙 역은 여러모로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불량하게 침을 뱉아야했고 몸싸움 한 번 해보지 않았던 그가 감독이 요구하는 “리얼 개싸움의 진수”도 보여줘야 했다. 박보영이 맡은 역은 여학교 ‘싸움짱’, 일진이다.
박보영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지난 16일 종로구 사간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내 안의 또 다른 면을 발견했다”며 미소 지었다.
”원래 화가나도 혼자 삭이는 편이에요. 감정을 격하게 표출한 적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연기를 하게 되면 일정부분 그 인물대로 살아야 하잖아요. 그동안 힘든 일도 있었는데 욕을 시원하게 하니까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고교 때 눈에 띄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는 그는 진짜 일진이 되려고 무던히 애썼다. 담배를 멋지게 ‘튕겨서’ 버려보려고 각고의 연습을 했고, 침 뱉는 ‘단련’에도 매진했다.
서울에서 전학 온 소희(이세영)와의 화장실 대결은 이 같은 불량스런 행동의 총화다. 영화에서 영숙은 중길의 마음을 훔친 소희와 온몸을 활용해 격한 대결을 펼친다.
”처음에 매우 걱정했는데, 촬영이 진행되면서 스멀스멀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맞으면서 너무 아팠거든요. 극의 진행상 영숙이 지면 안 되는 싸움이었어요. 한대라도 더 때리려고 노력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습니다.”(웃음)
사투리 연기도 상당히 자연스럽다. 원래 충청북도 증평 출신이지만, 전라도 사투리에 가까운 홍성 사투리가 매우 낯설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차지고 맛깔스러운 사투리를 만들어냈고, 이 같은 모습은 극 중 단연 눈길을 끈다.
그간의 캐릭터와는 많이 달라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안 해본 캐릭터라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여성 캐릭터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희소한 가치가 있는 영숙 역에 끌렸다”는 것.
사실, 박보영은 비슷한 이미지를 소비하는 다른 여배우들과는 다른 궤적을 보여왔다. 좋은 목소리, 귀여운 외모를 무기로 애 딸린 10대의 정남(’과속 스캔들’)을 징그럽게 소화했고, 희멀건 피부가 빛나는 ‘늑대소년’에선 폐병 앓는 얌체지만 내면은 강렬한 에너지로 똘똘 뭉친 순이 역을 실감 나게 그렸다.
그는 “운이 좋아 우연히” 히트작에 출연했다며 웃었다. 영화계 입문도 우연찮았다. 돈이 부족해 큰 인형을 살 수 없었던 시골 중학교 영화동아리에서 인형 역을 맡으며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촬영에 익숙지 않았던 선배들 때문에 “눈물이 주르륵 흐를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했다. 그런 신기했던 경험을 안고 영화에 푹 빠졌던 박보영은 출연한 영화가 청소년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서울을 찾았고, 그곳에서 길거리 캐스팅됐다. 주중에는 증평에서, 주말에는 서울의 연기학원에 다니며 배우의 꿈을 키우다 2006년 EBS 청소년 드라마 ‘비밀의 교정’을 통해 데뷔했다.
”오디션도 엄청나게 보고 엄청나게 떨어졌어요. 선생님들에게 연기 못 한다고 만날 혼났어요.”(웃음)
’과속 스캔들’이 흥행몰이를 하면서 갑자기 스타가 된 그는 소속사 문제로 잠시 힘든 시기를 겪었으나 ‘늑대소년’으로 다시 한 번 시선을 끌었고, ‘피끓는 청춘’으로 연기변신에 또 한 번 성공했다.
”아직도 제 연기를 화면으로 보고 있으면 부끄러워요. ‘내가 왜 저렇게 했지?’라는 후회도 들고, ‘지금 더 잘할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들고요. 그동안의 영화가 흥행한 건 제 힘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감정 연기가 가장 어려운 줄 알았는데 “’늑대소년’을 통해 일상의 디테일을 연기하는 게 더욱 어렵다”는 걸 알게 됐고, ‘피끓는 청춘’에서 “편할 것 같았던 화내는 연기가 어려웠다”고 말하는 박보영. “연기란 매번 할 때마다 힘들구나”라는 걸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는 그는 요즘 부쩍 연기에 대한 허기를 느낀다.
”예전에는 재미있는 거 반 힘든 거 반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재미있는 부분이 훨씬 많아요. 연기가 전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그 연기를 잠시 할 수 없을 때 상실감이 너무 견디기 어려웠죠. 지금은 연기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고 있어요. 물론 연기가 제 삶의 깊고 큰 부분이지만 그냥 일부분이라고 편하게 마음먹기로 했어요.”(웃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으로 올해를 시작한 박보영. 그는 반짝 뜨는 스타가 되기보다는 오랫동안 꾸준히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이 너무 행복해요. ‘나중에 꾸준히 잘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이 있어요. 꾸준히 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제 그만 쉬고, 잘했으면 좋겠어요. 올해의 목표는 다작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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