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웠던 그 시대 잊지 말자는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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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1-08 00:00
수정 2011-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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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르 클레지오 신작 허기의 간주곡

‘현대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로 불리는 르 클레지오(70)는 대표적인 지한파 작가다.

프랑스 문단에는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에서 한국인 독자를 언급한 기욤 뮈소 등 지한파가 많은데 그중에서 클레지오는 2007~2008년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초빙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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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모델로 전쟁통에서 성장해가는 여주인공을 그린 신작 ‘허기의 간주곡’을 펴낸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
어머니를 모델로 전쟁통에서 성장해가는 여주인공을 그린 신작 ‘허기의 간주곡’을 펴낸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


클레지오의 신작 ‘허기의 간주곡’(문학동네 펴냄)은 그가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될 무렵 프랑스에서 출간된 작품이다. 작가가 서울에 머물면서 집필한 책이라 한국 독자들에게는 더 각별한 의미가 있다.

클레지오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김치수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말 “당시 발표 일주일 전에 클레지오가 프랑스로 급히 돌아갔다. 노벨상은 사전에 수상자에게 언질이 가는 것이 확실하다.”고 언급했다. 노벨상 발표가 날 무렵이면 난리 법석을 떠는 우리의 부박한 국민성과 언론의 행태에 대해 김 교수는 클레지오의 전례를 들어 조용한 조언을 남긴 것이다.

‘허기의 간주곡’은 1930년대 초에서 1940년대 중반에 걸쳐 열살 소녀 에텔이 온실 속 화초 같던 외동 아이에서 억척스러운 삶의 주인공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에텔은 증조부의 죽음, 철 없는 아버지와 염세적인 어머니의 불화, 아버지의 불륜과 파산, 전쟁과 피난, 가난과 모욕 등을 겪으며 어른이 된다.

소설을 통해 클레지오는 한 여인의 성장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사건을 고발한다.

제목의 ‘간주곡’은 보통 기악곡에서 솔로 부분 사이에 등장해 반복적으로 연주되는 부분을 가리킨다. 모리스 라벨이 작곡한 단막 발레 작품 ‘볼레로’를 떠올리면 된다. 클레지오는 이 소설을 통해 같은 선율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볼레로처럼 허기를 주기적으로 이야기함으로써 치욕과 부끄러움의 시대를 영원히 잊지 말자고 호소한다.

‘허기의 간주곡’이 클레지오의 머릿속에서 발아하게 된 계기는 2009년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지성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와의 만남이었다고 한다.

클레지오는 그의 어머니처럼 레비 스트로스가 1928년 열린 ‘볼레로’ 초연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레비 스트로스가 ‘볼레로’를 보고 역작 ‘신화학’을 낳은 것처럼 클레지오 의 어머니도 ‘볼레로’를 본 뒤 인생이 바뀌었다.

클레지오는 ‘볼레로’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예언’이자 ‘어떤 분노, 어떤 허기에 관한 이야기’ 같은 것임을 깨닫고 그 선율을 담은 소설 ‘허기의 간주곡’을 쓰게 된다.

프랑스인인 클레지오의 어머니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모리셔스와 레위니옹에서 다시 프랑스로 이민 온 사람이었다. 전쟁을 억척스레 헤치고 살아 남은 여성 에텔의 이야기는 곧 클레지오 어머니의 삶이기도 했다. 클레지오는 태어나면서부터 군의관 아버지와 떨어져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기에 어머니는 그의 세계관과 문학관을 형성했다.

클레지오의 신작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은 관념적이고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역시 전쟁을 겪은 한국 사람들의 감성을 울린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2011-01-08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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