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창조경제’ 설문 · 부실한 R&D 예산제안서 제출 강요 · SW 아이디어 책상머리 공모 …
‘창조경제’의 총괄 사령탑을 맡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출발부터 연속으로 삐걱거리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한다면서 창조경제의 개념을 물어보는 어설픈 문항을 제시하는가 하면 다른 부처와 산하기관들에 ‘창조경제에 맞춘 연구개발(R&D) 예산안’ 수립을 강요해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미래부는 지난 5일부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와 함께 ‘창조경제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이 설문은 과총 회원 등 100만명 이상에게 발송됐다. 미래부는 “창조경제는 창의성을 핵심가치로 두고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경제”라고 제시한 뒤 10가지 문항을 물었다. 하지만 문항의 대부분은 ‘창조경제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느냐’, ‘이전의 경제와 다르다고 생각하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등에 ‘그렇다’ 또는 ‘아니다’로 답하는 의미 없는 질문들로 가득 차 있다. ‘창조경제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라고 응답자들에게 되묻는 문항도 있다. 또 ‘미래부에 바라는 점’ 문항에서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 ‘경제 성장과 복지의 균형’,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먹거리’ 등 정부가 당연하게 추진해야 할 과제들 중 2개를 선택하도록 했다.
한 민간 조사기관 전문가는 “창조경제에 반대하는 답변이 일정 수준을 넘는다고 해서 정책 기조를 바꿀 것도 아니잖으냐”면서 “무의미한 조사”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미래부 관계자는 “설문 내용 등을 과총 측에서 알아서 한 것으로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래부가 9일 공청회에서 제시할 예정인 ‘2014년도 정부 연구개발(R&D) 투자 방향 및 기준’도 알맹이는 없이 창조경제라는 구호만을 강조하고 있다. 미래부는 내년 국가 R&D 예산을 17조원 규모로 산정하면서, 4대 중점 추진 분야를 ‘창조경제를 뒷받침하는 R&D’, ‘국민행복을 구현하는 R&D’, ‘창의적 과학기술 혁신역량 강화’, ‘정부 R&D 투자시스템 선진화’로 설정했다. 하지만 개별 분야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마련하지 않았다.
8일부터 진행하는 ‘전 국민 소프트웨어 정책 아이디어 공모전’ 역시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공모전 주제는 소프트웨어 정책의 법, 제도 개선, 창업, 인력양성 등에 대한 개선방안이다. 하지만 미래부는 지원자의 기술력을 평가해 연구비와 기자재 구입비 등을 5000만~1억원씩 지원하는 사업 참여 시 가점을 주겠다는 입장이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2013-04-0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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