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끼니마다 납북 형 밥 떠 상에 올리셨는데”
20일 오후 금강산에서 진행된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는 국군포로 한 가족과 전시납북자 다섯 가족도 눈물의 상봉을 했다.국군포로와 전시납북자 당사자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 남북의 가족끼리 만났다.
최기호(83) 씨는 의용군으로 납북된 세 살 위 큰형 최영호 씨가 2002년 사망해 조카들과 대면했다.
최 씨는 방북 전 취재진에 “어머님이 형을 특히 그리워하셨다. 끼니마다 꼭 형이 먹을 밥을 떠서 상에 올리고 ‘밥공기에 물이 맺히면 네 형은 살아있는 것’이라 말씀하셨다”면서 “밥이 뜨거우니 당연히 물방울이 맺히지. 잘 살아있으리라 생각하신 걸 그리 표현하신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어 어린 시절 장난을 친다고 형에게 오줌을 누다가 미끄러진 일을 기억해내며 “형 성격이 참 순했다. 이렇게 조카라도 상봉이 돼서 감개가 무량하다”고 털어놨다. 최 씨는 북측 조카들이 형의 사진을 가져다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상봉에 나섰다.
이재일(85) 씨는 납북된 형 이재억 씨가 1997년 사망해 대신 조카들을 만났다.
이 씨는 형이 1950년 6∼7월께 18세의 나이로 납북된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이 씨의 부친은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고생만 시키다가 사라졌다”며 앓기 시작했고 납북된 아들을 간절히 기다리다가 1954년 52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 씨는 유일하게 남아 있던 형의 사진 한장을 석연찮게 도둑맞는 바람에 조카에게 확인할 증거가 없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곽호환(85) 씨도 전쟁통에 납북된 형이 1981년 사망해 조카들을 만나게 됐다.
당시 21세였던 형은 인민군 관계자들의 회의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곽 씨의 아들은 “아버님이 큰아버지를 많이 보고 싶어하셨는데 그 자녀들이라도 만나게 돼 소원 풀이하시게 됐다”고 전했다.
아버지가 납북된 이영부(76) 씨는 북측의 조카들과 마주 앉았다.
평북 용천이 고향인 이 씨는 전쟁 때 아버지가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동네 통장으로 일하다 자신이 열 살 때인 1950년 9월 납북됐다고 설명했다.
이 씨의 어머니는 생활고로 30대 후반인 1962년 세상을 떠났다. 이 씨는 장남인 줄 알고 살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북측에 형이 둘 있는 것을 알고 상봉 신청을 했다.
남편이 납북된 홍정순(95) 씨도 북쪽의 가족을 만났다. 공무원이었던 홍 씨의 남편은 6·25 발발 직후 북한으로 끌려갔고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홍 씨는 전했다.
부친이 국군포로인 이달영(82) 씨는 이복동생들과 상봉했다. 1987년 별세한 것으로 추정되는 부친과는 전쟁이 나고 1952년께 헤어졌고 국군포로라는 걸 전해 들었다고 한다.
이 씨는 어린 시절 부친에게 천자문을 배웠던 기억을 들려주면서 아버지 사진을 가지고 가 이복동생들에게 보여주겠다고 했다.
남측은 이번 상봉 행사를 준비하면서 국군포로와 납북자 50명을 선정해 북측에 생사확인을 의뢰했고 이 중 21명의 생사가 확인돼 6가족의 상봉이 성사됐다.
2015년 10월까지 20차례 진행된 상봉에서 남측은 350명의 국군포로와 납북자 생사를 북측에 의뢰해 112명이 확인됐고 이 중 54가족이 만났다.
북한은 납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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