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재풀 확충 시급… 재교육 등으로 경력단절 문제 해결해야”
박근혜 정부의 여성 정책 핵심은 공기업 여성임원 30% 의무할당, 미래 여성인재 10만명 양성 등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다. 첫 내각 구성에서 여성 장관을 2명밖에 임명하지 않아 여성계의 원성이 일자 12일 청와대 비서관 인사에 6명의 여성을 기용해 여성 비율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신문은 이날 김정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 최금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박한준 조세연구원 공공정책연구팀장과 박근혜 정부의 올바른 여성정책 방향을 모색하는 좌담회를 가졌다. 여성인력 의무할당제에 대해서는 ‘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해 견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하지만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를 해결해 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을 끌어내야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다는 데는 한목소리를 냈다. 군 복무 가산점 제도에 대해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은 “공무원 시험 응시자에게 가산점을 주기보다 군 경력을 인정하거나 정년을 연장하는 등의 방안이 더 현실적”이라고 밝혔다.박근혜 정부의 여성 정책에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12일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사에서 열린 전문가 좌담회에서 김정숙(왼쪽부터)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 박한준 조세연구원 공공정책연구팀장, 최금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이 여성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김정숙 회장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으로 여성계는 양성평등 내각을 기대했다. 세계적으로도 여성의 내각 진출이 화두인데, 이번에 너무 숫자가 적어서 놀라고 실망했다. 내용적으로도 여성가족부, 해양수산부로 영역이 너무 국한됐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내각에서의 여성의 비율은 50%를 넘어섰고,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 당시 내각이 출범할 때 여성이 50%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 경향과 동떨어졌다.
-박한준 팀장 각 부처의 수장이나 청와대 인사는 대통령과 함께 정치적 의사결정과 책임을 공유하기 때문에 여성의 몫이다, 남성의 몫이다 생각하기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가인재 데이터베이스(DB)에 20만명이 등록돼 있는데 남성이 17만명이고, 여성은 3만명이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여성 인재 10만 양성 프로젝트’의 핵심이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부터 바꿔서 사회 변화를 주도한다는 것이다. 대선 공약이 첫 조각에 반영되지 못해 아쉽지만, 여성 인재 풀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문제도 있다.
-최금숙 원장 이명박 정부에서는 여성 차관이 한 명도 없었다. 앞으로 실무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여성 차관이 여러 명 나오길 기대한다. 성(性) 대표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국회의원 공천에서 할당제가 강화되기를 바란다.
-김 회장 여성계에서 남성들의 반대에 밀려 실현하지 못한 여성 국회의원 후보 공천 50% 할당제를 올해 실현할 계획이다.
김정숙 여성단체협의회장
-최 원장 여성 인력 DB를 여성가족부가 애써서 구축하고 있지만, 개인정보 보호라는 문제가 있어서 적극적으로 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박 팀장 그동안 여성이 인재로 성장할 기회가 차단되어 있었다. 정부 부처의 3급 이상 고위공무원단 구성을 봐도 여성 숫자가 적고,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2011년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과장급 여성의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의 비중이 과장급 미만은 40%가 넘는데, 과장은 20%, 임원은 5~7%로 급감한다. 여성들의 경력이 단절됐거나, 유리 천장이 있어서 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 우리나라 여성의 발전사를 들여다보면 답이 나온다. 국가직은 1989년, 지방 정부는 1991년까지 여성 고위공무원은 전체의 10%밖에 뽑지 않는 할당제가 있었다. 여성을 많이 안 뽑도록 강제한 공무원 할당이 있었기 때문에 고위공무원에 여성이 없다. 의도적으로 여성을 찾아서 발탁하는 할당제로 여성 비율을 높여야 한다.
박한준 조세연구원 팀장
-박 팀장 ‘마미 트랩’이라고 해서 여성이 육아나 가사의 의무 때문에 마미 트랩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게 경력 단절의 원흉이다. 지난 10여년간 우리나라 전체 여성의 고용률은 정체됐지만, 20대 중후반은 증가했다. 하지만 30대의 취업률은 20대보다 10% 이상 떨어지는 등 경력 단절 현상이 두드러진다. 경력 단절 문제는 유연 근무제처럼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여건과 평가를 공정하게 받는 두 가지 시스템이 갖추어지면 풀 수 있다.
-김 회장 문제는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법이 도입되면서 비정규직은 대부분 여성으로 채워졌다.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은 남성의 3분의1이다. 특히 금융계가 심각하다. 유연 근무제를 활용하면서 대우가 좋아야 하는데, 비정규직처럼 대우가 부실하다. 20대 중반 여성의 취업률이 높다가 35세까지 떨어지는 M자형 그래프는 우리나라가 가장 심각하고, 그 다음이 일본이다.
직장여성이 임신, 출산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고쳐져야 문제가 해결된다. 아기를 낳고서 맡길 수 있는 영·유아 시설의 95%가 민간이다. 믿고 맡길 수 있는 국공립 영·유아 시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아기 낳고 1~2년 쉬고 가면 승진에 문제가 있다. 남성과 비교해 자꾸 후퇴하기 때문에 좌절감으로 (회사를) 그만둔다.
-최 원장 여성 경력 단절을 해결할 수 있는 핵심적인 방안 가운데 하나는 아빠의 육아휴직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아빠들도 자녀 교육에 열성적이다. 또한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여성 경력 단절이 국가 발전에 저해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경력 단절 여성을 재교육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최금숙 여성정책연구원장
-김 회장 장점은 아주 많다. 유엔 등 국제기구 조사를 보면 정책 결정 과정에 여성이 많이 참여하는 나라는 경제 발전 속도가 빠르다. 핀란드를 보면 20~30년 전에는 경제 발전 속도가 느렸는데, 고위직에 여성 진출이 늘면서 유럽에서도 빨리 발전한 국가가 됐다. 그 원인은 여성이 많을수록 투명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는 국회와 내각에 여성 비율이 50%에 이르자 2000년대 초 기업의 여성 임원을 40%로 늘리는 법을 만들었다. 기업에 여성 임원이 많을수록 품질이 좋아지고, 친환경적이며 건강한 제품을 많이 만들게 돼 기업의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통계가 있다. 여성이 남성과 비교해서 더 정직하다는 논리가 있느냐고 물으면 통계로 말할 수밖에 없다.
-박 팀장 여성 공직자 성공 사례를 보면 남성 공직자보다 좀 더 섬세하고 합리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개인 차이에 의한 것이지 성별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성 중심으로 정착된 공직사회에서 여성이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본질적으로 남녀의 차이가 아니라 개인의 차이이며, 그동안 여성이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해 성별 차이가 두드러지는 현상이 있었다.
-최 원장 여성 임원이 있는 회사와 없는 회사를 비교하면 여성 임원이 있는 회사가 수익을 더 많이 낸다. 여성은 가정에서 소통의 핵심에 있고, 소통의 비결을 가지고 있다. 직장과 공직에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부드러운 지도력을 발휘한다.
→공기업의 여성임원 30% 의무할당제에 대해서는.
-김 회장 할당제에 대해서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다. 할당제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며 여성 참여를 잠정적인 기간에 따라잡으려고 하는 어색한 제도다. 여성 참여가 원활하게 이뤄지는 유럽 선진국에서는 아직도 할당제를 쓰고, 풀지 않고 있다. 할당제에 대해 100% 찬성은 아니지만, 10~20년 동안 잠정적으로 적용해서 여성 비율이 올라가면 폐지하면 된다.
-최 원장 국가가 통제하기 쉬운 공기업에서 여성 임원 30% 의무 할당은 당연하다. 할당제는 능력은 있지만 아직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에게 필요한 제도다. 노르웨이는 상장기업은 여성임원 비율을 40%로 할당하고 있고,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할당제는 성별이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 실현의 기준으로 봐야 한다. 대한민국이 여성 대통령을 만든 민주적인 결단을 한 사회라면, 양성평등 문제도 정의로운 분배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박 팀장 의무할당제 도입은 의미 있는 접근이지만, 시간이 필요한 문제다. 공공기관 고위직 여성 숫자가 적은 것은 1999년까지 존재한 군 가산점 제도로 여성이 아예 진출을 못했던 한계 때문이다. 공기업은 정부 고용·노동정책의 테스트베드기 때문에 고졸 채용을 20%로 늘린 것처럼, 여성 임원 할당제도 법이 도입되어 일단 시작되면 실천할 것이다.
하지만 여성 인력이 워낙 적기 때문에 현재 공기업의 인적구조에서는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인사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발탁 인사를 하더라도 외부인사 수혈을 통해 채워야 할 경우가 많을 것이다. 여성을 너무 발탁 인사만 하면, 남성 역차별 논쟁은 물론 여성 인재들이 역량을 발휘하지 못할 때 비난을 받는 역효과도 우려된다.
-최 원장 여성도 안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여성도 학군사관후보생(ROTC)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안보에 기여하면 군 가산점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정리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2013-03-13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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