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 마련된 상봉 행사장은 60년간 헤어져 있던 양쪽 가족들이 만나는 순간 ‘눈물바다’로 변했다.
[포토] 이산가족상봉…수십년 세월에도 ‘혈육의 정’은 온전히…
먼저 행사장에 들어가 가족별로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측 가족들은 오후 3시10분께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가 울려퍼지면서 북측 상봉신청자들이 들어서자 꿈에 그리던 혈육의 이름을 앞다퉈 부르기 시작했다.
일부 남측 가족들은 한시라도 빨리 얼굴이 보고 싶은지,테이블에 놓여 있던 번호판을 높이 치켜들고 앞으로 나가기도 했다.
북측의 최고령자로 국군 출신인 리종렬(90)씨는 남측의 아들 민관(61)씨를 만나자 부둥켜안고 “민관아‥ 민관아‥”라고 이름만 부르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생후 100일 무렵 아버지가 국군에 입대하면서 헤어지게 됐다는 민관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지금껏 제사도 지내왔어요”라고 울부짖으며 리씨를 마주 안은 뒤 “어머니가 얼마나 그리워하셨는데‥”라며 통한의 눈물을 쏟아냈다.
조카 민관씨와 함께 형을 만나러 간 리종렬씨의 동생도 “조금만 일찍 만났으면 어머니도 뵐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움에 말끝을 흐렸다.
남북을 통틀어 최고령인 남측의 김례정(96)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가 딸 우정혜(71)씨가 다가오자 “꿈에만 보던 너를 이렇게‥”라며 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북측의 윤태영(79)씨는 상기씨 등 남측 동생 4명이 가져온 부모님 영정 앞에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잊은 듯 멍하게 서 있었으나,잠시 후 “나 죽은 줄 알았지?”라며 농담을 건네 분위기를 바꿨다.
치매 증상이 조금 있는 권재희(91)씨는 북측의 남동생 준희씨가 나타나자 그래도 옛 모습이 떠오르는지 휠체어에 앉은 채 눈물을 글썽였다.
남측의 언니 김선아(80)씨를 만난 김월화(77)씨는 “내가 살아 있고 언니도 살아 있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고 꿈만 같다”며 마냥 웃음을 지었다.
북측의 막내오빠 김현군(75)씨와 상봉한 김옥자 씨는 “부모님과 다른 오빠들이 모두 막내오빠 살아있는지 모르고 상심하다 돌아가셨다”면서 통곡했고,현군씨는 “그래도 네가 살아 있어 이렇게 만나지 않았냐”며 동생을 달랬다.
북측의 태우균(82)씨는 어릴 때 동생들과 함께 부른 기억이 나는지 ‘고향의 봄’을 불렀고,태씨의 여동생은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살았어야 했는데‥”라며 눈물을 흘렸다.
대다수 가족들은 가져온 사진을 보여주며 근황과 건강 상태를 물어보기도 했는데,북측에서는 여러 명이 영웅훈장과 상장을 자랑하듯이 내보여 눈길을 끌었다.
우리 측 가족 중에는 가계도를 보여주면서 그동안 태어난 후손들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북측 김제국(83)씨를 만난 남측 동생들은 “다 같은 핏줄인데 형님의 북쪽 가족들도 채워 달라”고 말했다.
형 성길용(79)씨를 만나러온 남측의 성진수(76)씨는 첫 상봉이 끝날 무렵 갑자기 어지러움을 호소해 응급차로 숙소에 옮겨졌다오후 3시10분께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로 시작된 첫 상봉 행사는 1시간50분 뒤인 오후 5시께 북한 노래 ‘다시 만나요’가 나오면서 끝났다.
가족들은 오후 7시부터 우리 측이 마련한 만찬에 참석,두 시간 정도 식사를 하며 60년간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연합뉴스
오빠 나도 한번만..
(금강산=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추석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 1차 첫날인 30일 오후 금강산면회소에서 북측 정기형씨가 여동생인 남측 정기옥(오른쪽)씨의 얼굴을 어루 만지고 있다.
(금강산=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추석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 1차 첫날인 30일 오후 금강산면회소에서 북측 정기형씨가 여동생인 남측 정기옥(오른쪽)씨의 얼굴을 어루 만지고 있다.
[포토] 이산가족상봉…수십년 세월에도 ‘혈육의 정’은 온전히…
먼저 행사장에 들어가 가족별로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측 가족들은 오후 3시10분께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가 울려퍼지면서 북측 상봉신청자들이 들어서자 꿈에 그리던 혈육의 이름을 앞다퉈 부르기 시작했다.
일부 남측 가족들은 한시라도 빨리 얼굴이 보고 싶은지,테이블에 놓여 있던 번호판을 높이 치켜들고 앞으로 나가기도 했다.
북측의 최고령자로 국군 출신인 리종렬(90)씨는 남측의 아들 민관(61)씨를 만나자 부둥켜안고 “민관아‥ 민관아‥”라고 이름만 부르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생후 100일 무렵 아버지가 국군에 입대하면서 헤어지게 됐다는 민관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지금껏 제사도 지내왔어요”라고 울부짖으며 리씨를 마주 안은 뒤 “어머니가 얼마나 그리워하셨는데‥”라며 통한의 눈물을 쏟아냈다.
조카 민관씨와 함께 형을 만나러 간 리종렬씨의 동생도 “조금만 일찍 만났으면 어머니도 뵐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움에 말끝을 흐렸다.
남북을 통틀어 최고령인 남측의 김례정(96)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가 딸 우정혜(71)씨가 다가오자 “꿈에만 보던 너를 이렇게‥”라며 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북측의 윤태영(79)씨는 상기씨 등 남측 동생 4명이 가져온 부모님 영정 앞에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잊은 듯 멍하게 서 있었으나,잠시 후 “나 죽은 줄 알았지?”라며 농담을 건네 분위기를 바꿨다.
치매 증상이 조금 있는 권재희(91)씨는 북측의 남동생 준희씨가 나타나자 그래도 옛 모습이 떠오르는지 휠체어에 앉은 채 눈물을 글썽였다.
남측의 언니 김선아(80)씨를 만난 김월화(77)씨는 “내가 살아 있고 언니도 살아 있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고 꿈만 같다”며 마냥 웃음을 지었다.
북측의 막내오빠 김현군(75)씨와 상봉한 김옥자 씨는 “부모님과 다른 오빠들이 모두 막내오빠 살아있는지 모르고 상심하다 돌아가셨다”면서 통곡했고,현군씨는 “그래도 네가 살아 있어 이렇게 만나지 않았냐”며 동생을 달랬다.
북측의 태우균(82)씨는 어릴 때 동생들과 함께 부른 기억이 나는지 ‘고향의 봄’을 불렀고,태씨의 여동생은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살았어야 했는데‥”라며 눈물을 흘렸다.
대다수 가족들은 가져온 사진을 보여주며 근황과 건강 상태를 물어보기도 했는데,북측에서는 여러 명이 영웅훈장과 상장을 자랑하듯이 내보여 눈길을 끌었다.
우리 측 가족 중에는 가계도를 보여주면서 그동안 태어난 후손들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북측 김제국(83)씨를 만난 남측 동생들은 “다 같은 핏줄인데 형님의 북쪽 가족들도 채워 달라”고 말했다.
형 성길용(79)씨를 만나러온 남측의 성진수(76)씨는 첫 상봉이 끝날 무렵 갑자기 어지러움을 호소해 응급차로 숙소에 옮겨졌다오후 3시10분께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로 시작된 첫 상봉 행사는 1시간50분 뒤인 오후 5시께 북한 노래 ‘다시 만나요’가 나오면서 끝났다.
가족들은 오후 7시부터 우리 측이 마련한 만찬에 참석,두 시간 정도 식사를 하며 60년간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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