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총리 강제구인·공관 현장검증 불구 수뢰혐의 입증 못해
한명숙(69) 전 국무총리가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싸움 끝에 뇌물수수 혐의를 벗었다.대법원은 14일 인사청탁과 함께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미화 5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 전 총리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3년2개월여 동안 이어진 공방은 검찰의 완패로 끝났다.
검찰은 야권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였던 한 전 총리를 겨냥해 ‘표적수사’를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검찰은 사상 첫 전직 총리 강제구인, 총리공관 현장검증 등 잇따라 초강수를 뒀지만, 결국 정치적으로 편향된 목적에 의해 무리한 수사를 벌였다는 비판을 자초한 셈이 되고 말았다.
◇ 길고 긴 싸움의 시작은 = 2009년 12월 초 곽 전 사장이 비자금을 조성해 한 전 총리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검찰이 수사 중인 사실이 것으로 알려지면서 긴 싸움의 막이 올랐다.
한 전 총리는 곧바로 “단돈 일원도 받은 일이 없다”고 반박했다. 야권은 한 전 총리가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라는 점에서 검찰이 ‘지방선거용 기획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반발했다.
검찰의 잇따른 소환통보와 한 전 총리의 출석거부, 검찰의 체포영장 집행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하면서 수사는 검찰과 야권 전체의 대결 양상으로 흘러갔다.
이윽고 검찰은 그해 12월22일 곽 전 사장에게서 5만달러를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로 한 전 총리를 재판에 넘겼다.
◇ 재판에서 검찰 ‘연전연패’ = 1심 재판에서는 사상 처음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현장검증이 이뤄지고,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에 대한 논쟁까지 펼쳐지는 등 법조계 안팎의 이목이 집중됐다.
여기다 한 전 총리가 재판 과정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굳히면서 재판 결과가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검찰이 1심 선고 하루 전날인 2010년 4월8일 한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의혹을 수사한다며 한신건영을 압수수색하자, 별건 수사를 통해 뇌물수수 사건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사실상 물증 없이 곽 전 사장 등의 진술만을 근거로 기소가 이뤄진 뇌물수수 사건에서는 곽씨 진술이 법정에서 자주 바뀌면서 진술의 신뢰성에 금이 갔고, 결국 1심 재판부는 기소 108일 만에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결심 공판에서 50분을 들여 한 전 총리의 유죄를 주장하며 징역 5년을 구형한 검찰의 완패였다.
또 재판부가 곽 전 사장에 대한 검찰의 강압적인 수사 태도를 문제로 지적하면서 검찰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1심 무죄 이후 한 전 총리는 서울시장 선거전에서 오세훈 시장과 박빙의 레이스를 펼쳤지만 석패했다.
검찰은 1심 이후 항소를 제기한 것은 물론 ‘의도된 반쪽짜리 판결’이라며 이례적으로 자료까지 내 법원 판결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2012년 1월 서울고법도 1심과 마찬가지로 “곽 전 사장의 진술이 신빙성과 일관성이 없다”며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앞서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서 9억여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도 한 전 총리가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대법원이 이날 무죄를 확정 지어 뇌물사건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마무리됐다.
이번까지 모두 4차례 재판은 검찰은 ‘4대0’으로 참패한 셈이 됐다.
◇남은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은 = 이제 남은 것은 서울고법 형사6부에 배당돼 항소심 재판 개시를 앞둔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11년 10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뒤 1년5개월째 재판 일정이 정해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불거질 수 있는 정치적 논란을 피하고, 앞서 기소된 뇌물 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 결과를 지켜보고자 그간 법원이 재판을 미뤄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 선고가 이뤄지면서 남은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의 항소심 재판도 곧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이 연패 상황을 뒤집을 결정적 계기를 마련할지, 한 전 총리가 연이어 무죄를 입증할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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