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의 과학산책]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 참여

[이은경의 과학산책]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 참여

입력 2024-12-27 01:00
수정 2024-12-2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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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은 과학연구와 사회운동에서 모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다. 그가 노벨 과학상과 평화상을 모두 받았다는 사실은 이를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마리 퀴리, 존 바딘 등도 노벨상을 두 번 받았지만 모두 과학상이었다. 현대화학의 기초를 놓은 폴링은 핵무기 반대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1만명이 넘는 과학자들의 서명을 받아 1963년 핵실험금지조약이 체결되는 데 역할을 했다.

독특한 이력과 유명세 덕분에 폴링은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논의할 때 자주 언급되지만, 실제 그의 사회운동은 순탄하지 않았다. 원폭 투하의 충격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에 반핵운동은 유명한 과학자들이 다수 참여하는 광범위한 지식인 운동이었다. 핵무기 위험과 원자력 기술의 민간 통제를 강조하는 ‘원자과학자연맹’ 같은 과학자 단체들이 만들어졌고 많은 과학자가 동조했다. 폴링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냉전이 시작되자 핵무기 반대 운동은 공산주의를 이롭게 하는 위험한 활동으로 인식됐다. 1950년 매카시즘 광풍 속에서 폴링은 당국의 수사를 받고, 여권 발급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교이자 26세부터 교수로 재직했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으로부터 정치활동을 멈추라는 경고를 받았다. 그의 활동은 일시적으로 위축됐다가 1954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이후 다시 활발해졌다. 칼텍은 노벨상 수상자, 폴링의 교수직을 유지해 주었으나 그의 연구를 지원하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 과학자의 사회운동을 두고 다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기후 문제다. 기후 문제에 심각하고 빠른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믿는 과학자들이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대표적으로 ‘과학자 반란’을 들 수 있다. 2020년 결성된 이 단체는 2021년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리는 글래스고에서 기후 문제 시위를 하면서 대중에 알려졌고, 많은 과학자의 호응을 얻었다. 이들은 활동 현장에서 흰색 실험복을 입어 과학자-활동가 정체성을 드러낸다. ‘과학자 반란’의 회원들은 기후 위기를 설득하기 위해 전문성을 동원하고 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해 퍼포먼스를 하는 등 적극 행동한다. 그 과정에서 국제기구에서 작성 중인 보고서를 사전에 빼낸다든지, 시민불복종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걸치게 된다든지 하는 일도 발생한다. 회원 중에는 이러한 활동 때문에 소속기관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은 사례가 있다고 보도됐다.

이런 활동은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오래된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과학자는 전문직 종사자로서 연구 및 지적 활동을 윤리와 공익에 맞게 수행하는 것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인가, 연구 결과가 인류의 삶의 질과 복지 향상, 환경보존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해야 하는가. 어느 쪽이든 불법이 아닌 한 개인 과학자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은경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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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이은경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2024-12-27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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