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김정은 첫 특사 최룡해…결자해지 나서나

北김정은 첫 특사 최룡해…결자해지 나서나

입력 2013-05-22 00:00
수정 2013-05-22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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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인 북중관계 풀 적임자…부친은 동북항일연군 유명 지휘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로 중국을 전격 방문한 최룡해(65)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김정은 체제의 핵심실세다.

그가 김 제1위원장의 첫 특사라는 사실만으로도 김정은 체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알 수 있다.

북한이 최 총정치국장을 김 제1위원장의 첫 특사로 파견한 것은 현재 북한이 처한 위기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적임자라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북한이 작년 12월 장거리 로켓 발사와 지난 2월 3차 핵실험 이후 대북정책의 근간은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북한을 압박해왔다.

특히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지지하고 실제 실행에 옮기는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미국의 대북제재에 발을 맞추면서 북중 관계는 조금씩 삐걱거렸고 북한의 고립도 가중됐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체제의 핵심실세인 최 총정치국장을 특사로 공식 파견함으로써 북중 관계는 물론 북미관계 나아가 남북관계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노림수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조명록 당시 군 총정치국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미국을 방문, 북미공동코뮈니케를 발표해 북미관계의 골격을 잡았던 것처럼 최 총정치국장은 G2(주요 2개국)의 위치에 오른 중국에 특사로 가 북중관계를 축으로 하는 대외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겠다고 계산할 수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 군 최고위급이 이례적으로 김정은 제1위원장의 특사로 방중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고, 북중 군사협력이 강하다는 점을 외부에 선전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최 총정치국장은 현재 공식 서열상으로는 김 제1위원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다음이지만 김 제1위원장의 후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함께 김정은 체제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양대 권력자다.

그는 김정은 후계 체제가 들어서면서 장성택 부위원장의 지원에 힘입어 김정은 체제의 핵심 실세로 급부상했다.

최 총정치국장은 김정은이 2010년 9월 3차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공식 데뷔할 때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라는 민간인 신분에서 대장 계급장의 군복으로 갈아입고 등장, 김정은 체제의 군부 핵심 실세로 급부상할 것임을 예고했다.

김정은 체제가 공식 출범한 작년 4월 4차 당 대표자회에서는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 위원, 당 정치국 상무위원, 군 인사를 좌우하는 총정치국장,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 요직을 모두 꿰찼고 차수 계급장도 달았다.

’선군정치’를 이어가는 김정은 체제에서 사실상 김 제1위원장 다음가는 군부 2인자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최 총정치국장은 특히 3차 핵실험과 이후 한반도의 위기국면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져 현 정세에 대한 중국 측의 이해를 구하는 데는 적격이라는 내부판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군부의 강경행보를 선두에서 이끈 최 총정치국장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직접 방중해 중국 지도부의 불편한 심기를 풀어 위기를 탈출하겠다는 의도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최 총정치국장은 중국과 깊은 인연이 있다.

그의 부친 최현(1982년 사망) 전 인민무력부장은 일제강점시기 중국의 동북항일연군에서 싸운 이름난 빨치산 지휘관이다.

당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맹위를 떨친 최현의 명성은 김일성 주석을 뛰어넘어설 정도였다. 그런 최현이 김 주석에게 충성하고 특히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에 힘을 보태 김정일 위원장의 신임이 컸고 군부 내에서도 존경의 대상이었다.

최 총정치국장의 모친 김철호 역시 최현과 함께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한 1세대다.

이런 가정 배경은 북중 관계를 풀 수 있는 최적격 인사라는 평가에 무게를 더한다.

최 총정치국장은 2남 중 차남으로 황해남도 신천군에서 태어났고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녔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하사관으로 군복무를 했다.

이후 그는 부모의 후광에 힘입어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부장, 국장. 부위원장을 거쳐 1986년 위원장에 올랐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1996년 이른바 청년동맹 비리사건으로 경질됐다. 당시 청년동맹의 많은 간부가 처형됐지만 그는 ‘주모자’임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후계 체제에 기여한 부모의 후광과 김정일 위원장의 각별한 애정으로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이어 평양시 상하수도 당비서를 거쳐 노동당 총무부 부부장을 지냈으며 2006년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로 정계에 공식 복귀했다.

그의 형인 최룡택(1940년생)은 부모의 동북항일연군 활동 당시 연길에서 태어났으며 당 조직지도부 간부(인사과장) 등으로 활동하다가 지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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